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지나친' 표현의 가능성을 전제한 민형사적 규제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열린' 견해 표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전제한 법적, 사회적 인정을 중시할 때 비로소 보장될 수 있음을 상기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가 책 전반에서 주장하는 내용, 곧 우리나라 형법상 명예훼손·모욕, 민법상 명예훼손에 기한 손해배상 및 통신관련법상 실명제와 콘텐츠에 대한 행정기관의 포괄적 심의의 성립요건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에 공감하며 동의한다. 저자가 헌법정신에 의거해 표현의 자유를 분석하고, 그 분석과 표현의 자유 관련 세부 사례에 대한 법리적 판단에 근거하여 이들 규제에 대한 비판을 정리하고 그로써 이들 규제가 결국 검열과 다를 바 없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기존의 내 얕은 문제의식을 더욱 견고히 하고 심화할 수 있었다.
사실 저자가 위헌성을 주장하며 폐지를 요구하는 제도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현실적 차악으로서의 필요성과 무조건적 폐지가 아닌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고 생각하기에 저자의 각론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가 그의 논의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문제제기는 이들 세부적 이견과 관계없이 타당하다. 저자가 신랄하게 비판하듯 정부와 검찰은 표현에 대한 이들 규제를 악용하여 권력에 불리한 시민들의 비판적 논의와 공익적 의혹 제기를 응징하며, 사법부는 애매한 논리로 그 응징을 정당화한다. 의혹 제기자가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진실임을 스스로 확실하게 밝혀야 면책되고, 진실이라 하더라도 ‘공익적 목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법체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리한 기소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올바른 법의 논리로 대응하여 표현의 자유를 일부 인정하고 있지만, 설령 그 때문에 그러한 논의 자체에 대한 응징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정부와 검찰은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유사한 논의를 위축시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이자 자연적 권리이다. 국가와 권력이 개입·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 자유이며, 별도의 인위적 장치가 없어도 그 자체로 원래부터 보장되는 자유라는 뜻이다. 이를 망각하고 ‘표현의 자유가 남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가 남용인지 설정하고, 남용된 경우 어떤 규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칙을 마련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담긴 정신을 곡해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최고법원이 인정하듯 어떤 표현이 타인 또는 사회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가해 해악을 발생시킨다면 그 표현은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며, 그러한 규제의 필요성만 역설한다면 결국 진정한 표현의 자유 자체마저 축소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이렇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유 남용에 대한 우려라는 명분 아래 ‘권력 남용’이라는 정말로 위험한 남용을 가능케 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자유는 평등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 원리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국가나 타인의 언행을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특히 소중하다.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증명되어 왔듯 자유로운 입장 표명과 교환이 가능한 공론장의 존재는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입장에 동의할 수 있는 자유만 열려 있는 반쪽짜리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입장을 비판하거나 반대의견을 제시할 자유는 철저한 감시망에 둘러싸인 채 심한 경우 진실을 말했어도 처벌받을 수 있는, 즉 ‘진실유포죄’가 존재하는 반쪽짜리 공론장만 존재할 뿐이다.
이제 시민들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나머지 반쪽의 자유와 공론장을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 앞서 보았듯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정부·검찰·법원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커녕 반대로 수행하는 이상, 시민들은 자신의 기본권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규제에 굴복하지 말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쟁취 -- 당연한 권리를 싸워서 얻는다고 하는 것에 어폐가 있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 하고 지켜나갈 수 있고, 그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미네르바와 PD수첩 제작진처럼 희생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그 희생이 강고한 국가의 벽을 무너뜨리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잃음으로써 모두에게 더 소중한 것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것임을 입증한다. 저자 역시 표현의 자유 관련 법적 논쟁의 중심에 섬으로써 이를 몸소 보여주고 있으며*, 필자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기꺼이 법적 투쟁에 나설 결심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 나서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 모두의 참여가 모여 충분히 큰 목소리를 내야만 정부·검찰·법원도 그들의 존재 목적대로 시민의 자유를 옹호하게끔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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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저자 박경신 교수는 2011년 방통위의 검열에 반대하는 뜻을 밝히며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의 성기 사진 7장과 옷을 입지 않은 남성의 뒷모습 1장을 게시하였다. 그는 이에 대해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영상 배포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이에 불복, 상고하여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2012/10/19 - 박경신 교수 판결, 취지에는 동의하나 최소한의 책임은 지워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