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민주적 사법권의 확립을 위한 법과 정치의 공존과 그 역할

Super:H 2012. 10. 23. 15:07

  필자는 정치학과 법학 모두에 흥미가 있으며 그 둘을 함께 활용해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의 민중친화적 발전을 이끌고자 희망하는 법조인 지망생이다. 그러나 법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두 학문을 어떻게 접목해야 하고 그 결과를 다시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최근 고민을 많이 해 왔다. 그러던 중 법률가의 탄생: 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아서》(이국운, 2012) 의 법정치학적·법사회학적 분석 내용을 읽으며 그 고민에 대한 훌륭한 답을 찾았다.


  법에 부당한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정치, 곧 '그들만의' 정치와 법이 적극적으로 바꾸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으로서의 정치, 곧 '모두의' 정치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견제하고 후자를 북돋우기 위해서 법의 장벽은 낮아야 한다. 그래야 법은 시민사회의 명실상부한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 민주적 대표성을 갖고 그 민주적 의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이 최근 대두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과도기적 충돌 상황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법과 정치의 바람직한 공존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법조체계와 법률시장―진입 요건이 까다로워 시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은 이와 정반대다. 법조인을 양성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양성된 ‘법조삼륜’의 구성원을 재사회화하여 통상적인 그 집단의 일원으로 재탄생하게 하기까지 법조인으로서의 폐쇄적 특권을 내면화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법감정을 인식하고 국민으로부터 적정한 견제를 받으면서 ‘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민의 민주적 대표’에 걸맞은 봉사정신과 책임성, 명예 등을 기르도록 교육받아야 할 법조인들이 이들 덕목과는 동떨어진 왜곡된 직업의식을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법권의 독립’을 ‘사법의 민주성’보다 우위에 놓는 이상, 그 어떤 개혁도 부정적 이미지로 점철된 지금의 사법부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사법개혁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가 사법시험의 폐해를 시정하여 법조계 입성의 문을 더 열어 사회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올라운드(all-round)' 법관을 양성하겠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판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도 사법의 민주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미약하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체제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법조 시스템이 이토록 성역(聖域)화된 것은 그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여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의 혼란을 정리하려던 미군정, 그리고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조선인 법률가들이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법조체계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관련 내용은 2012/10/18 - 해방 직후 과도기적 헌정사에서 찾는 사법 불신의 근본 원인 참조) 그래서 사법의 민주성 회복, 아니 확보를 위한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민주성을 띨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된 시대의 요구이자 깨어 있는 국민들의 소망이고, 한 사회를 올바르게 조망해야 할 법관들의 책무이다. 그래서 이 책을 관류하는 문제의식은 그것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효하고 의미가 있다. 그 문제의식이 결실을 맺도록 우리나라 사법부가 더 개방적이고 더 떳떳하게 진정한 국민의 대표로 자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때 법과 정치, 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땅의 법조인, 나아가 예비법조인 모두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와 함께 법조계 내외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회정치학적 분석력과 문제해결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와의 소통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때 다른 모든 국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법부를 더 가까이,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사법부가 외연뿐만 아니라 내연도 꽉 찬 국민의 민주적 대표로 다시 태어날 때, 자율성과 타율성이 조화를 이룬 이 건강한 감시체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고 그로써 사법부와 국민 모두가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