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이야기를 쓰겠다고 작정하고, 처음에는 19세기쯤에 갖다놓고 그냥 허황한 민담조의 서사를 쓰려고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우리네 그맘때의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올해는 대선까지 있어서 더욱 실감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근대적 상처'의 잔재가 지금도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황석영, '작가의 말' 중 (《여울물 소리》 p.491)
이 이야기는 담담하게 전달되어 더욱 아픈, 19세기 말 스러져가는 모순덩어리 조선 사회와 그 사회에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민초들의 이야기다. 소설은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지만 그 깊음을 표출할 길이 막혀 동학에 뛰어든 서얼 출신 이야기꾼의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삶의 배경이 된 그의 상처 많은 가족사와 그 상처를 견뎌내는 아픔 속에서도 온전한 삶을 영위하려는 그의 가족들의 모습에서 그의 이야기는 비단 그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꾼 이신통이 전국에서 만난 놀이패들과 천지도인들을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 평생을 떠돈 남편 이신통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연옥의 하염없는 기다림과 한(恨)은, “만만치 않았”던 “그맘때의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던 당대 민중 모두의 목소리다. 그래서 연옥이 곳곳에서 신통과 친분이 있는 이들을 만나 들으며 모으는 그들의 회상은 독자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그 회상 속에 드러나는 신통의 삶과 그 궤적을 관류하는 후기 조선의 사회상은 독자에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슬픔과 분노를 안긴다.
독자의 마음이 이토록 불편할진대, 연옥과 신통의 아픔이 독자가 느끼는 것보다 몇 곱절 더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 그리고 그들이 표상하는 19세기 말 우리나라 민초들은 --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 비통함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하면서도 기나긴 세월 속에서 그것들을 스스로 삭인다. 그들은 서너 번 잠깐 동요할 뿐 마지막까지 줄곧 담담하다. 그러면서도 신통처럼 실행력 넘치고 혈기왕성한 당대 민중들 중 일부는 무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암울한 현실에 직접 맞섰다. 그리고 연옥처럼 자신들을 억누르는 사회적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 민중들은 신통 같은 이들의 충돌과 희생을 원망하다가도 마음으로나마 신통 같은 이들을 지지하며 “근대적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바로 여기에, 이야기꾼 신통이 연옥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는 그 자신의 이야기가 슬프고 아픈 것을 넘어서 비장한 이유가 있다. 소설 속 이야기 전체의 순서는 다소 꼬여 있을지언정,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을 주창하며 조선 후기 사회를 병들게 한 부당한 차별과 특혜와 비리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를 역설한 천지도, 곧 동학의 정신은 한결같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당대 관(官)의 행태와 그로 인한 민초들의 고통과 대조되면서 그 곧고 바른 정신은 더욱 밝게 빛난다.
그리고 120년 전 그때와 똑같은 현재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행태와 그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이 오버랩될 때,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책 p.488)"가는 역사라는 여울의 물소리는 더 길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신통이 천지도로써 이루고자 했던 뜻을 이루고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될 그 날이, 아직은 오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