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재구성

현행 주민소환제의 문제점

Super:H 2007. 12. 15. 14:49
최근 하남에서 실시된 하남시장과 시의원들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부결되었습니다.
유권자의 33.3% 이상이 투표해야 한다는 투표 성립 조건이
31%의 최종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충족되지 못해 자동 부결 처리된 것입니다.
주민소환제는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주민들 스스로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제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하남 주민소환 실시 과정으로 볼 때, 주민소환제는 아직 확립되지 못했습니다.

첫째, 주민소환제가 남용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주민소환제라는 법적 조항을 근거로 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어쩌다 한 경미한 실수를 빌미로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하남 주민소환 청구의 원인이었던 '주민 동의 없는 광역 화장장 유치'도
님비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예일 뿐, 시장을 물러나게 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남시장이 광역 화장장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조금 서둘렀던 건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은 충분히 생각해서 그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었고
주민들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광역 화장장 유치를 지역 발전의 기회로 삼아 동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둘째, 주민 간의 분열을 불러일으켜 지방자치제의 근본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이번 주민소환 청구 과정에서 드러난 하남 시민들의 분열과,
시장과 주민들 간의 계속된 갈등에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는 주민들 스스로 그들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 대표자를 믿고 따르며 대표자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서로 뭉쳐
중앙 정부의 개입 없이도 지방을 자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실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민소환제가 현행대로 실시되어 주민들이 심사숙고하지 않고 무조건 주민소환을 청구한다면,
궁극적으로 지방자치제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던 주민소환제의 원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스스로 뽑은 대표자를 물러나게 하려는 주민들과 자리를 지키려는 시장과의 갈등을 조장하고
주민소환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분열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셋째, 대표자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 주민소환이 청구된 대표자는 주민소환 여부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지 못합니다.
주민들이 주민소환제를 그들의 후보자를 검증하는 통로로 인식하고 남용할 경우,
대표자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 지방 운영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또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소환 청구안이 최종 부결될 경우,
그 과정에서 초래된 업무 손실과 주민간의 분열과 갈등은 향후 대표자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다시 직무에 복귀한 대표자가 진정한 지역의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고,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주민들이 다시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정책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민들 스스로 그들의 대표자를 감시하여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민소환제는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관련 규정들이 모두 탄탄하게 정비되어 주민소환제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제 자체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관계 법령에 의해 개선되지 않는다면,
주민소환제의 의의를 구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