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동 조항을 2020. 12. 31.을 시한으로 개선입법이 있기 전까지 잠정적용한다고 명하였다(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크게 두 가지 의의가 있으나, 다소 불명확한 이유로 단순위헌 선언이 아닌 헌법불합치 선언을 함으로써 두 가지 아쉬움도 남겼다.

1. 첫 번째 의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관계 재정립

이번 결정 법정의견(헌법불합치 의견)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관계에 있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임신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적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하는 여성이 반드시 태아의 생명권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공임신중절은 법정의견이 인용하는 바와 같이 여성이 태아의 사회적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울 때 ‘태아를 위한’ 차악으로서 이루어진다.

태아는 여성의 존재를 그 생존과 성장의 사회적 필요조건으로 한다. 현대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임신 22주 이후에는 모체 밖에 나온 태아의 자가생존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나, 그 또한 현대 의학기술이 바로 ‘모체의 존재’에 상응하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숙아 또는 조산아가 생모의 손길 없이 인큐베이터에서만 지내면서 생존할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그러므로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려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여 태아가 생존과 성장의 사회적 필요조건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는다.

2. 두 번째 의의: 생명권의 제한적 절대성을 고려한 삼분기 이론(trisemester theory)의 불채택

이 맥락에서 보면 태아의 생명권은 적어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의 규범조화를 위해서는 조정될 수 있는, 즉 ‘제한적 절대성’을 가지는 권리로 보아야 한다. 물론 생명권은 기본권 중 가장 소중한 최상위 기본권으로서 절대적 권리이지만, 그것이 곧 절대적으로 제한불가능한 권리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양심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의 대표적인 예이지만, 양심에 따른 대체복무자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복무환경을 감수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다른 규범과의 이익형량을 위해서 종종 일정 부분 제한을 받는다. 사실 생명권 또한 사형제가 명문규정에 남아있는 우리 형사법체계에서 볼 수 있듯 형사정책적 필요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권리이며, 나아가 사형제 폐지론 입장에서도 생명권의 제한적 절대성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생명권도 제한할 수는 있지만 죄질이 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사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이어서 위헌이다’라는 논리 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위와 같은 생명권의 ‘제한적 절대성’과 삼분기 이론(trisemester theory)은 양립불가능하다. 삼분기 이론은 낙태죄에 관한 법적 논의의 고전인 미국 연방대법원 Roe v. Wade 판결(1973년)에 등장하는 법리로, 임신기간을 셋으로 나누어 제1삼분기(임신 12주 이전)에는 자유로운 낙태가 가능하고, 제2삼분기(임신 13주-25주)에는 낙태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며, 제3삼분기(임신 26주 이후)에는 낙태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는 이론이다. 낙태죄 가능여부가 임신주차에 따라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삼분기 이론은 태아의 생명권이 ‘어느 순간부터는’ 절대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보았듯 태아의 생명권은 태아와 모체 간 관계의 본질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모체의 자기결정권과 대립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그에 따라 적어도 모체의 자기결정권과의 관계에서는 일부 조정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닌다. 이와 다른 전제에 서 있는 삼분기 이론은 더 이상 유효한 이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결정의 법정의견이 삼분기 이론을 묵시적으로 부정하고 임신시기에 따른 기계적 낙태허용여부 결정 방식 대신 “임신 22주 이전이면서 산모에게 합리적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낙태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낙태허용조건을 제시한 것 또한 타당하다. (같은 이유로 본고가 지지하는 이번 결정의 단순위헌의견은 삼분기 이론을 지지하는 부분에서만큼은 타당하지 않다.)

3. 첫 번째 아쉬움: 결정이유로는 위헌, 그런데 주문은 헌법불합치

결국 이 사건 법정의견의 요지는 “상당수의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고려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사로서 이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낙태를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그 자체로 위헌무효가 되는 것이 맞는다. 법정의견과 같이 당해 조항의 위헌성을 상세하게 밝히면서도 부수적인 이유를 들어 헌법불합치 선언을 하고 당해 조항의 잠정적용을 명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헌법불합치 선언은 법률의 위헌성이 인정됨에도 법률을 즉시 무효화하지 않고 국회의 개선입법을 기다리겠다는 선언이다. 헌법불합치 선언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다. 0 법률에 위헌적 부분이 있지만 법률 전체가 무효가 되면 이미 제공되던 합헌적 혜택마저 없어지게 되어 일단 그 혜택은 계속 남겨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또는 0 법률에 합헌성과 위헌성이 혼재돼 있어 헌법재판소가 법률 중 위헌적 부분의 범위를 섣불리 단언하면 극심한 법적 혼란이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낙태죄 처벌조항이 전자에 해당하지 않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법정의견은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인데 지금 처벌조항은 사실상 모든 낙태를 처벌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바, 이는 곧 낙태죄 처벌조항의 위헌성이 명백하다는 것으로서 후자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낙태죄 처벌조항에 관하여는 법정의견 스스로 제시하는 논거에 의하더라도 그 위헌성을 즉시 확인하는 단순위헌 선언을 했어야 맞는다. 법정의견이 그와 달리 헌법불합치 선언을 한 것은 처벌조항을 즉시 무효화하는 데 따르는 현실적 부담감을 피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 ‘보다 더 합헌적인’ 개선입법을 촉구하고자 하는 의미였을 것으로 보이나, 그러한 부담이 헌법재판소가 즉시 제거할 수 있었던 위헌적 법률의 제거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번 결정의 단순위헌의견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법정의견이 헌법불합치 선언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드는 사정은 모두 위헌임이 명백한 낙태죄 처벌조항의 잠정적용을 허용할 만한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일갈한다.

4. 두 번째 아쉬움: 낙태죄 처벌조항의 평등권 침해 여부 판단 회피

법정의견이 택한 헌법불합치 선언에 대한 비판은 법정의견이 낙태죄 처벌조항의 자기결정권 침해여부에 관해서만 판단하고 평등권 침해여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으로도 이어진다. 법률의 평등권 침해에 따른 위헌성은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위헌성보다 더 중대한바, 낙태죄 처벌조항의 평등권 침해를 함께 인정했다면 헌법불합치 선언의 정당성은 그만큼 낮아지고 그와 반대로 단순위헌 선언의 타당성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의견이 드는 논거만으로도 낙태죄가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임신 과정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관여함에도 여성에게만 임신에 따른 부담을, 그것도 형사처벌이라는 가장 중한 형태의 부담을 부과하는 것은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라는 평등원칙에 현저하게 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정의견은 낙태죄 처벌조항의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미 논증했다는 이유만으로 평등권 침해여부에 관한 판단을 아예 생략했다.

이번 결정에서와 같이 하나의 법률조항이 복수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기본권 경합 사례에서, 기존 헌법재판소 결정례는 하나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다른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논리적으로 당연히 포함하는 경우라면 후자에 관한 판단은 생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낙태죄 처벌조항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과 평등권에 대한 제한은 낙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장을 고려하면 엄연히 서로 다른 보호법익에 대한 제한이며, 법정의견 역시 그 문언을 통해 두 기본권의 제한이 서로 포함관계에 있지 않음을 자인한다. 그럼에도 법정의견이 별다른 보강논거 없이 평등권 침해에 관한 판단을 회피한 것은 위에서 살펴본 헌법불합치 선언의 미약한 정당성을 더는 약화시키지 않고자 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는데, 이는 작은 오류를 덮기 위해 더 큰 오류를 범한 것에 다름아니다.

5. 결론에 대신하여

이번 결정의 합헌의견은 “임신은 남녀 공동의 문제이므로 남성의 아이 양육에 관한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나, 그 때문에 낙태죄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힌다. 이에 관하여 법정의견과 단순위헌의견은 다음과 같이 반문할 것이다. “임신이 남녀 공동의 문제라면서 왜 국가형벌권은 여성에게만 처벌받지 않으려면 임신을 유지하라고 강제하는가?” 여기에 필자의 반문도 더하고자 한다. “그동안 국가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공동책임자인 남성에게 여성과 태아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한 적이 있는가?”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결정은 이들 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그 답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국회의 개선입법이 그 답과 실천방안에 대한 지난 수십 년간의 논의를 잘 담아내기를 희망한다.

  1. | 2019.04.17 00:03 | PERMALINK | EDIT | REPLY |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궁금증이 있는데요. (저는 낙태죄 위헌의 입장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1. 태아의 생명권의 제한적 절대성에 관하여 : 헌재 결정문의 논지는 제가 보기에 현재 의학기술 상 22주를 기점으로 완전한 생존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22주 이전의 태아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 -> 태아의 시기에 따라 국가가 생명보호의 정도를 달리 할 수 있다. 로 보이는데요. 이는 태아의 생명권이 절대적임을 확립했다기보다 오히려 상대적인 권리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2.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은 대립하는 것인지? 에 관하여 : 헌재가 양 기본권이 대립하지 않다고 본 것인지 저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헌재결정문 중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요,

    다시 읽어보면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국가가)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는 것이다.) -> 낙태를 금지하지 않고 낙태가 감소하게끔 배려한다. 이를 통해 (낙태되지 않은) 태아의 실질적 생명권을 (국가가) 배려할 수 있다.

    즉 저는 앞 문단의 헌재요지는
    1. 태아 생명권의 상대성 하에서,
    2. 22주 이후의 태아(보다 보호가치 있고 실질적으로 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생명)의 생명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해,
    3. 국가가 22주 이전 낙태를 허용하고 임부를 배려한다(낙태를 감소시킬 사전적, 사후적 수단을 투입한다). 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저 문단이 필자님의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은 충돌하지 않는다"를 단순히 확립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1) 22주 이전까지는 여전히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하고, (2) 22주 이후에는 임부를 배려하는 것이 태아를 배려하는 것이다(충돌하지 않는다), 로 읽힙니다.

    저는 오히려 헌재가 22주 이전까지의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의 충돌 문제를 생명의 보호정도를 달리 한다는 명목으로 생략하고 넘어간 것이지 않나, 싶네요.. 사실 당연하게도 '태아의 생명권이 모체의 자기결정권과 대립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면 '모체의 자기결정권과의 관계에서는 일부 조정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2. BlogIcon 웅숭깊은 Super:H

    | 2019.04.17 00:4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소중한 의견 고맙습니다. 여쭤보신 부분에 관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저도 글쓴이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가 쓴 제한적 절대성이라는 표현에서도 절대성보다는 그 절대성이 ‘제한적’이라는 데 방점이 있습니다. 즉, 태아의 생명권이 적어도 모체의 자기결정권과의 관계에서는 일정 부분 제한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이상 생명권의 일반적 특성으로서의 절대성을 정면으로 부인할 수는 없기에 ‘제한적’ 절대성이라고 지칭해 보았습니다.

    2.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의 관계는 사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각지에서 진행돼 온 낙태죄 관련 논쟁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두 기본권의 관계가 특정 방식으로 ‘확립’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 둘의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낙태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그토록 치열하게 진행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헌재 결정이 두 기본권의 관계를 이견의 여지 없이 ‘확립’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헌재 결정이 이 부분에 관해 가지는 의의 역시 해석에 따라 다양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번 결정의 법정의견이 그간 우리 헌법재판소가 낸 낙태죄 관련 결정례에서 일관되게 두 기본권의 대립성을 드러냈던 것과 달리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의 관계가 “같은 방향”에 놓여 있다고 본 부분입니다. 법정의견 중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면 그러한 변화된 관점을 단적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 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인하여 그 대립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태아는 엄연히 모와는 별개의 생명체이지만, 모의 신체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전적으로 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매우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은 자녀가 출생하면 입양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머니로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양육책임을 부담한다.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安危)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

    이와 같은 특성은 낙태갈등 상황에서조차도 종종 발현된다고 한다. 일정한 경우에 있어서 임신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임신·출산·육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자녀가 출생하면 어머니가 될 자신뿐만 아니라 태어날 자녀마저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낙태를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이러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은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를 고정시켜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러한 특성은 추상적인 형량에 의하여 양자택일 방식으로 선택된 어느 하나의 법익
    을 위해 다른 법익을 희생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 조화의 원칙에 따라 양 기본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고 마련할 것을 국가에 요청하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은 서로 대립적이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을 조화시켜서 둘 모두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두 기본권이 서로 충돌하는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두 기본권이 동시에 100%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두 기본권의 조화를 위해서라도 각각의 기본권이 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조정’은, 두 기본권이 대립관계에 있을 때 어느 하나의 기본권이 ‘포기’되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는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임신과 출산이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적 절대성을 가지는) 태아의 생명권에 비해 조금 더 강조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태아의 생명권이 조정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 헌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한 제 독해입니다. 이 맥락에서는 “22주 이전”이라는 시점이 기존의 삼분기 이론에서 임신주수가 가졌던 것과 같이 태아의 생명권의 절대성 여부를 결정짓는 기계적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권-자기결정권 간의 합리적 조정을 위한 다양한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임신 22주(이든 다른 어떤 시점이든)을 기점으로 생명권-자기결정권을 조정하는 ‘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복수의 기본권의 규범조화적 해석을 위해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 지점에서는 글쓴이님이 제시하신 해석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제 관점에서는, 22주 이전에는 두 기본권이 대립적이었다가 그 이후에 비로소 두 기본권이 같은 방향에 놓이게 된다고 보는 해석은 오히려 이번 결정의 법정의견이 극복하고자 했던 이분법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3. BlogIcon

    | 2019.04.18 20:39 | PERMALINK | EDIT | REPLY |

    헌재결정 전문을 읽어 보았지만 그 논리 구성이 빈약하다는 (적어도 더 철저하게 사안을 파고들어가지는 않았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네요.
    (다시 한 번 저는 낙태죄 위헌의 입장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살펴보면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매우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은 자녀가 출생하면 입양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머니로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양육책임을 부담한다. 특별한 예외적 사정이 없는 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安危)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한다."라면서,

    산모가 어머니로서 출생한 자녀의 양육책임을 부담한다고 하면서, 바로 다음 문장에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녀가 출생하면 어머니&태아의 양자가 불행해질 것을 감안한다 (이후 낙태를 결심, 실행하게 된다고 하고요.)

    이 논리는 (1) 낙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타당합니다. 임신한 여성이 자살하거나, 자포자기하여 생활이 무너져 심한 병에 걸리거나 하는 경우에요.
    이때에는 양 기본권이 대립관계에 있지 않고 산모를 보호하는 것이 태아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이 함께 보호됩니다.

    (2) 그렇지만 낙태를 염두에 둔다면 타당하지 않습니다. 생명권은 다른 기본권과는 다릅니다. 신체의 자유, 영업의 자유 같은 기본권과 다르게, 생명권의 '조정'은 곧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뜻하게 됩니다. 즉 헌재가 추상적으로 적어 놓은 판결문과 다르게, 개개의 구체적인 사건들마다 생명권의 조정은 (규범조화적으로 양 기본권이 최대한 실현된다기보다는) 좋게 표현하면 조정이지만 박탈임에 분명합니다.

    헌재가 제시한 산모와 태아의 관계가 어디에 적용될 때 더 타당한가라고 물어보면 아마도 백 중 구십은 (1)이라고 대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저 문장이 양 기본권의 대립적이지 않은 관계를 조명하면서 22주 전 낙태 허용이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리필연적인 근거가 되기는 힘듭니다.

    헌재는 이 차이점을 짚지 않고, 마치 낙태를 염두에 두지 않은 논리로 양자가 대립하지 않으므로 태아의 보호와 산모 자기결정권의 보장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어조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는 개개의 사건들이, 더욱이 공익실현 같은 추상적 사건도 아닌 낙태라는 구체적 사건임을 고려한다면 분명 빈약합니다. 헌재가 저 문장을 전개한 라)태아의 생명보호수단 부분의 결론으로 뜬금없는 사회적, 제도적 여건의 마련을 등장하는 이유가 저는 이것이라고 봅니다.

    차라리 저는 " 임부에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제한을 수반하게 되므로, 태아의 생명권과의 사이에 법익의 균형을 도모할 필요성, 즉 태아의 생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범위 내에서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요청된다.
    " 라는 2010헌바402판결의 반대의견이 더 논리적이고 이번 사건의 논리구성에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양자는 대립관계에 있고 법익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어느 시기부터는 한 기본권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판결문과 제가 언급한 판결문을 모아 놓고 어느 것이 "22주 전 낙태 허용"이라는 이번 헌재결정의 논리에 더 타당한 논리전개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역시 백 중 구십은 이전의 반대의견을 택할 것이라고 봅니다.

    헌재가 이번에 양 기본권이 대립하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싶었음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에 든 근거와 논리 구성은 매우 빈약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혹은 여론의 영향을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

  4. BlogIcon 웅숭깊은 Super:H

    | 2019.04.18 21:17 신고 | PERMALINK | EDIT | REPLY |

    결국 생명권의 절대성이 ‘제한적’ 절대성일 수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고 생명권의 실현-박탈 양자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생각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듯 합니다.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도 하나의 답이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권을 제한이 불가능한(박탈만이 가능한) 기본권으로 본다면 글쓴이님의 의견은 타당합니다. 이번 결정의 단순위헌의견 또한 이러한 이익형량 중심 기본권론의 관점에서 삼분기 이론을 주요 논거이자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와는 다른 전제에 서 있고, 그에 따라 이번 헌재 결정 법정의견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권이 ‘조정’은 존재할 수 없고 박탈만이 존재하는 절대권이라면, 제가 본문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사형제도 누군가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어서 언제나 정당화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사형제 폐지론자입니다만 이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같은 이유로 낙태죄 위헌의 근거를 특정 시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일방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두는 것도 단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차 강조하건대 낙태는 임부에게 단순히 ‘태아를 떼는 것’ 이상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저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 중 택일하자는 법리를 벗어나 양자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낙태의 현실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서 낙태가 현실적으로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기본권이론 하에서 모두 포섭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번 결정 법정의견을 자세히 보시면 임신 22주라는 시점을 불변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 22주 전후에 제반 사정을 고려”하라는 다소 유동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유동적 기준 설정 또한 그 시도의 일환입니다.

    물론 그와 별개로 “그런 조화가 실제로 가능하긴 한 것인가?”라는 지적은 유의미하며, 이번 법정의견이 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지적했듯 법정의견이 단순위헌선언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논거를 들고도 결론으로는 헌법불합치 선언을 선택한 것 또한 법정의견의 논거가 아직 충분히 강력하지는 않다는 인식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본권들의 관계를 이분법적 기본권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낙태와 같은 상황에서, 이번 결정 법정의견의 의의는 ‘기존의 이분법적 기본권론으로 위헌 논거를 만들 수 있으니 그에 맞추어 논리를 구성하는 것’을 넘어서 ‘이익형량을 중심에 둔 기본권론이 부족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규범조화적 기본권론에 따른 논리구성도 가능함을 보여준 것’에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아직 불완전하다고 해도, 헌법재판소가 그 소임인 규범통제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는 의의는 남을 것입니다.

    발전적 논의를 위한 고견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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