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정확히는 왜 그런 노후한 선박이 안전불감증 속에서 운항할 수 있었고 그 후에 공권력의 부작위로 사고 직후 골든타임을 속절없이 날려보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은 국가적으로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단원고 유가족들이 원하는 형태에 준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해 그 자체로 필요하며, 일각에서 나오는 법치주의 파괴 운운하는 주장 역시 근거 없음을 법률전문가들과 내곡동 사저 특검 등 전례가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세월호 사건을 이유로 다른 법안을 '단 하나도' 처리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국회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했으면 세월호 특별법 논의는 계속하되 타 법안 논의도 차차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세월호 사건에는 출구전략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며 그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세월호 사건에 묻혀 하염없이 계류되고만 있는 다른 이슈들에 대한 책임 있는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물론 일상으로의 복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특별법 관련 논의가 계속 이어진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보수를 지향함을 자처하는 일부 세력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세월호 논의를 여기에서 멈춘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지만 않을 뿐 수면 아래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세월호 사고(와 그 이후 구조 및 사후처리 과정에서의 '2차 사고')처럼 언젠가는 다시 터질 것임을 고려하면, 그런 일상으로의 복귀는 불안으로의 복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여당이 세월호 사고를 ‘딛고’ 나아가기보다는 ‘덮고’ 나아가려는 행보를 취하는 것은, 여당의 당연한 정치적 목표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지지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기에 필자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세월호 진상규명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는 야당이 해야 할 몫이다. 야당이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이 문제에 너무 지쳐 진상규명이 필요하기는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됐으니까 그만 좀 하자!”라고 내뱉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은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도 다른 할 일도 제도권 정치 내에서 어느 정도 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바꾸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파헤쳐 바꾸자는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동력은 결국 대중의 강한 요구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세월호 논의를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불완전한 합의안을 실리를 이유로 수용하지도 명분을 이유로 반대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스스로 세월호 문제를 소모적 정쟁 프레임으로 이동시키려는 여당의 전략을 도와주며 민심을 잃고 있다. 이미 실기(失機)했지만 지금이라도 야당은 국민의 민생과 국가구조의 안전을 함께 잡을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
여당은 한때 ‘세월호 특별법 논의와 밀린 민생법안 관련 합의를 병행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주장의 궁극적 의도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최소한 여당은 국민이 민생과 안전 둘 모두를 요구하고 있음을 인식했고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활용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지금 야당은 둘 모두를 놓친 채 무너지고 있다. 옳지 않은 명분은 없지만, 실리를 잃은 채 지켜낸 명분은 자기위안 이외에 아무 것도 지켜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그리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 구조의 지속가능성이 더 제대로 내실 있게 이뤄지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야당은 그 진의와 상관없이 대중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한 지금의 ‘투쟁’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