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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감싸줄 수 없지만 위헌정당은 아니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변론 방청기

Super:H 2014. 7. 22. 15:49

2014. 7. 22.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2013헌다1)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사건(2013헌사409) 제11차 변론기일을 방청하고 왔다. 여러 변론 중 한 번, 그것도 증인신문이 예정돼있는 오후 부분을 제외한 오전 부분만 보고 왔는데도 최종 선고 나오려면 11월은 돼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사로 전해지는 분위기만 대충 보고 8-9월쯤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가서 보니 검토해야 할 증거만 정부 쪽 통진당 쪽 합쳐서 3천 건이 넘는다. 아래 서술하는 대로 그 증거가 다 유의미한 건 아니지만 그 많은 증거를 어쨌든 한 번 이상 살펴보기는 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 선고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그러나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현재까지로 본 바로는 정당해산심판청구 본안과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 둘 모두를 기각한다는 결론이 같은 날 함께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 측이 신청한 증거 수는 많지만 그 중에서 통진'당' 전체의 위헌성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원래 가처분신청은 해산심판 대상이 된 정당의 활동이 대한민국 헌법질서에 현저하고 급박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본안 판단 전에 인용되는 것이지만, 사안의 특성상 본안에 대한 판단과 분리해서 먼저 검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정당의 활동이 위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 헌법질서에 대한 위험도 크다고 할 수 없어서 법리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아도 큰 결점은 없다고 판단된다.

정부 측 증거 중에는 당 차원에서 강령과 활동의 위헌성을 직접 증명하기 힘든 일부 당원들이나 관련자들의 발언 내용을 단순 전달하는 언론사 및 통진당 당보 기사가 정말 많았고, 민노당 시절을 포함하여 통진당 내 계파갈등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 그래서 오히려 일부 계파가 문제지 통진'당' 자체는 위헌정당이 아니라는 주장을 강화하는 증거도 있었다. 이 외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 몇 가지 나왔고, 개중에는 그 때문에 양측 변호인이 언쟁을 하다가 재판장이 증거 보강이 필요하다는 통진당 측 변호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정리하기 위해 개입한 적도 있었다.

한 예로, 'NL이 통진당 출범 당시 진보대통합을 주도했고 그 후 통진당을 그들 의견대로 끌고 나가려는 패권주의를 고수했다. 그래서 통진당은 위헌이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정부 측은 진보대통합은 북한식 사회주의국가 수립을 향한 1차 목표고 패권주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북한식 수단이라고 암묵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은 통진당 출범의 모태가 됐던 진보대통합은 NL계뿐만 아니라 PD계는 물론이고 현 정의당, 노동당, 전 국민참여당 등 다양한 진보 세력이 원내 세력 강화를 위해 함께 추진한 것이었지 다 반대하는데 NL계가 혼자 밀어붙인 게 아니었고, 패권주의는 정당 내 권력구조 배분의 문제고 통진당 측 변호인 말대로 “제1정당인 새누리당에도 현존하는 문제”지 그 자체로 북한을 추종한다는 증거도 어떤 정당의 존재를 위헌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도 아니다.

이렇게 정부 측은 '왜 통진당이 위헌인가?'라는 질문에 '통진당이 위헌이므로 통진당이 관여했던 일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통진당은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부정한다'는 순환논증을 하고 있다. 논리(학)적으로 순환논증의 가치는 주장을 뒷받침할 유일한 근거가 그 주장 자체뿐이라서 '0'인데, 안타깝게도 이 예시 외에도 정부 측은 기본적으로 통진당이 곧 종북이라는 전제를 깔아야만 위헌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을 근거로 통진당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중이 실질적 주권자가 되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 세계 민주국가들에서 주창된 바 있는 정치적 지향이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국민주권원리의 실질적 확대 및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이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은 실상 사회주의, 그것도 그냥 사회주의가 아니라 원류 사회주의라고 하기도 어려운 주체사상이라서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민주주의가 아님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진짜 진보적 민주주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통진당 강령에 나와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당내 교육자료에서 사회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의 일환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온전히 유럽에서 나타났던 그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김일성식 진보적 민주주의와 구분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는 최소한 21세기에는 대학에서 수업도 열릴 만큼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범위 안에 있는 사상이지 정부 측이 보는 것처럼 북한에 동조하는 사상은 결코 아니다.

이처럼 정부 측이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는 증거를 다수 들고 나와 여기에 기초해서 무리한 주장을 심판정에서 ‘적법하게’ 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헌재가 이 사건에 관해 헌재법상 민사소송법 준용 조항을 정당해산심판에도 자구(字句) 그대로 적용한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에 대한 형사소추의 성격이 강해서 증거능력을 엄격히 따져서 요건을 갖춘 증거만 인정하는 형사소송법을 적용하는 게 더 바람직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했다면 정부 측이 낸 증거들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호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하는 증거들을 애초에 배제한 후 법적 정당성도 더 높고 시간 면에서도 더 효율적인 변론 진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민사소송법을 준용한 탓에 일단 제출된 증거는 웬만하면 다 채택하되 예외적으로 배척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불필요한 증거취지 설명과 그에 뒤따르는 (굳이 안 해도 됐을) 반박 과정이 너무 길어 전체적인 변론절차가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통진당의 주축이 구 민노당계에서 떨어져 나온 NL계인 건 맞는데, NL계가 곧바로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이석기가 이끄는 'RO'처럼 정말 유일한 최선의 대안은 북한식 사회주의라고 강하게 믿고 실제로 그 생각에 의해 어떤 행동을 하려는 주사파는 불법집단이 맞는다. (이들의 조직과 행동이 국보법 위반인 건 맞지만 그 행동이 내란음모에까지 해당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2014/02/17 - 아무리 '종북'이어도 내란은 다른 문제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1심 판결에 부쳐, 2014/03/01 - 이석기 사건, 판결문을 읽어봐도 종북과 내란은 다른 문제다 참조.)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통진당 전체도 위헌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여론이 통진당 내에서 이석기 같은 사람들 목소리만 주목해서 그렇지 통진당 내에도 (NL이기는 해도) 이석기식 ‘급급진’ 노선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잘못을 집단이 집단의 이름으로 져야 하고 그래서 그 집단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다. 

한편 통진당 측은 정부 측의 모든 주장을 반박하거나 부인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 측 주장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 근거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태도는 다소 무책임해 보인다. 2012년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와 이석기의 RO 등 통진당에, 최소한 통진당 구성원 중 상당수가 실정법을 어긴 잘못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부 측이 이런 부분들이 통진당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관련 증거를 들고 나올 때도 반론만 하려다 보니 그 부분에서만큼은 오히려 통진당 측이 더 할 말이 없고 궁색해 보였다. 물론 이석기 사건 공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진당 입장에서는 쟁점을 여러 개 남겨 둬서 자신들 주장을 펼 수 있는 여지를 더 남겨 놓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기는 했겠지만,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은 분명히 인정하되 ‘그 잘못들만으로 통진당이라는 집단의 존재 자체가 위헌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이석기 일파가 북한을 적극 추종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은 통진당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는 것이 더 설득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이번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통진당 측이 명백히 드러난 잘못이 있는데도 그것을 부정한 일부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논점에서 정부 측의 논리가 약하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통진당의 위헌성을 입증할 책임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정부 측에 있다. 그렇다면, 통진당이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중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정당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헌법적으로 그 결성부터 막아야 할 위헌정당은 아니라는 적극적인 항변의 설득력 유무를 떠나서, 정부의 입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만으로도 통진당은 해산되지 않는 것이 맞는다. 다시금 말하건대 정치적으로 통진당은 여러 악수(惡手)를 두었고 그런 통진당을 지지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통진당이 위헌정당이며 따라서 해산돼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으며, 정부의 통진당 해산심판청구는 무리한 시도이자 정치적 탄압으로까지 비춰질 여지가 농후하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