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의 탄생

저자
이국운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2012-04-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좋은 법률가 없이, 좋은 민주주의는 없다!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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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하면 사법권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그렇다면 "사법의 민주성은 사법의 독립성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요청되는 헌법적 가치"이며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명제는 어디까지나 입법적 대표나 행정적 대표들과 비교해 사법적 대표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법부의 구조와 체계는 사법부의 독립을 '사법부의 독점'이자 '사법우월주의의 실현'으로 해석하면서 출발한 탓에 사법의 민주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고려가 결여되어 폐쇄적이다. 사법부의 이러한 폐쇄성, 그리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약한 민주적 대표성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신의 원인이다. 필자는 이 분석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해 왔기에 올 4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손뼉을 쳤다. 미래의 법조인으로서 지금의 밝지 않은 현실을 통탄하고 미래에 그것을 바꾸는 데 앞장서고자 희망하는 필자가 원했던 지식과 내용을 드디어 깊게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사법부의 폐쇄성 및 일반 민중의 사법 불신의 근본 원인을 통시적으로 고찰한 뒤, 이를 심화시키는 현 사법부의 신임 법관 양성 과정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하려 했던 기존 사법개혁들의 한계와 실패 원인을 밝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 사법 체계의 문제와 그 해결 방향을 다시 한 번 제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늘 원하고 목표해 오던 것보다 논의의 깊이가 얕아 아쉽다면서 그 점에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고 했으나, 필자에게는 총 9장 중 1장만 읽었음에도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주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민주적, 공화주의적 요소를 결여한 채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만을 강조하게 된 원인은 다음 세 가지다. (1)일제 패망 이후 유엔으로부터 남한만의 단독 정부 구성을 승인받기 위해서라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남한에 빨리 도입하고 정착시키려 했던 미군정의 급박함과 (2)일제 치하에서 조직상으로도 실제 업무상으로도 종속된 데다 일본인 법관들에 밀려 말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법률가들의 직업적 이해관계, 그리고 (3)위 둘이 맞물려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 해방 후 우리나라의 특수한 환경.





  사실 당시 대다수 조선인 법률가들은 처음에는 배심제도 도입, 고위법관의 선출직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들 전체에게 고위법관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전후 격랑의 과도기 속에서의 민중의 혼란과 정치적 인식 부족으로 인한 현실적 차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등과 같은 안을 내놓으며 사법의 민주성을 적극 고려했다. 법원이 사법부(지금의 법무부와 같은 기능을 하는 행정부 산하 부처)로부터 독립함으로써 행정부의 입김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사법부의 공화주의적 원리도 중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 군정이 한국 법원의 조직을 형식적으로라도 빨리 구성하여 체계화하기 위해 과도법원조직법 입법을 서두르면서 관련 논의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한시라도 완성된 사법조직의 외피를 갖추려 했던 미 군정은, 도입 시기와 필요성 여부, 그리고 세부 방안 등에 대한 이견이 많아 합의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요구됐던 위 내용을 법안에 반영할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적 기반이 일천한 비법조인 출신 고위 법관 -- 당시 대법원장과 몇몇 고등법원장들을 포함한다 -- 들은 사법의 독립성 확립이라는 단기적 목표가 일단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사법의 민주성 논의를 뒷전으로 밀어내는데 일조했다. 이들은 미군정이 일제 강점 하 한국의 사법 시스템과 현재의 관련 상황을 빨리 파악하기 위해 임명한, 법조계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필요한 지식은 부족했던 유학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사법체계가 일거에 무너진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민중들의 목소리까지 듣다가는 새로운 민주적 사법체계 확립이 더욱 늦어질 수 있다"며 대통령이 고위법관을 임명하거나 최소한 고위법조인 회의에서 고위법관 후보를 제청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한시가 급했던 미군정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배심제도와 고위법관 선출제 등을 도입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미군정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법안은 점점 그 방향으로 굳어져 갔다. 그러자 미군정과 그들이 임명한 비법조인 출신 법관들의 의견에 반대했던 좌익과 중도 성향 일반 법관들도 더 이상의 관련 논의를 하지 않았다. 일제 치하에서 법원 외부의 조선총독부에 눌리고 법원 내부에서 일본인 법관들에게 또 눌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들 역시 사법부의 독립을 쟁취하기를 고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도법원조직법은 미군정이 의도했던 대로 의결됐고, 정부수립 이후 각 조직의 이름만 소폭 바뀌었을 뿐 그대로 유지된 채 법원조직법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찾아낸 "사법 불신의 기원"이며, 요즘 수능 법과사회와 정치 공부를 하면서 그 교과서의 이상적 내용과 현실의 괴리를 찾아낼 때마다 나를 아프게 괴롭히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이 책의 1장 '해방 공간에서 사법 기구의 재편 과정'의 요지이다. 사법부가 다소 닫혀 있다는 평가를 받고 그 때문에 지켜줘야 할 대상인 민중으로부터 오히려 외면받는 현실, 그리고 그 원인인 사법부의 '신성성'(2010/04/03 - [서평] 불멸의 신성가족 - 김두식 참고)의 근저에 있는 진짜 원인을 이제야 찾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어딘가 막혀 답답했던 곳을 뚫린 듯한 청량감을 느꼈고,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들 중 처음으로 첫 한 장만을 읽고도 내용과 감상을 공유하여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일종의 소명마저 생겼다. 그 결과물이 이 장문이다.


  그리고 이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았으니 이로 인한 현실의 심각성을 되새기고 이를 심화시키는 2차적 원인들을 알아보면서 그들이 위 근본 원인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다 깊이 살펴보려 한다. 그것이 저자가 이어지는 2장부터 6장까지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다루는 내용이며, 직간접적 체험에 근거하여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금방 독파하기 어려운 논문 수준의 글들인데다 쉽거나 재미있게 또는 기분 좋게 읽히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몇 주간 이 책을 쭉 잡고 꼼꼼히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다. 1/9만으로도 신선하고 영양만점인 학문적 충격과 앎의 기쁨을 얻었으니, 다 읽으면 아홉 배, 아니 그 이상으로 소중한 양식을 주리라 기대한다. 덤으로,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 양식이 낳을 '종합 서평'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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