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확정 판결, 파기환송 안 했지만 법리에 맞다
대법원이 원심법원(고등법원 또는 지방법원 합의부, 곽 교육감 사건의 경우는 고등법원)에 사건을 파기환송하는 경우는, 원심에 중요한 법리 오해가 있고 그 오해로 인해 원심법원이 사실심리 과정에서 사실을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을 경우이다. 사실심, 즉 사실 자체에 대한 조사와 판단과 법률심, 즉 사실심에 의해 판단된 사실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모두 진행하는 1,2심법원과 달리 대법원은 법률심만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심의 오류를 자체적으로 시정할 수 없어서 하급법원에 대법원이 제시한 올바른 법리판단에 의거해 사실심을 제대로 진행한 후 다시 판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원심이 법리를 오해하여 법률심에서 오류를 범했지만 그 오류로 인해 사실심이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라면 대법원이 원심의 법리오해만 지적하고서도 파기환송 없이 원심 판결을 확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법률심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사실심의 결과가 변하지 않으므로 하급법원에 사실심을 다시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1)원심이 심리하여 인정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2)거기에 원심의 오해를 보정한 대법원의 올바른 법리적 판단을 적용했는데 (3)최종 판단이 원심과 동일한 경우라면 대법원이 원심의 법리오해를 지적하는 동시에 파기환송 없이 '오해 없는 올바른 법리에 의해 판단해도 원심의 사실 판단은 변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원심의 판단은 옳다'는 논리로 소송당사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법리오해가 있지만 올바른 법리적 판단에 따르더라도 원심의 사실판단이 변하지 않아 사실심을 다시 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법리를 적용했다면, 그에 따라 이뤄진 사실에 대한 판단도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물다 해도 그런 사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그 경우 대법원은 사실심을 다시 할 것을 하급법원에 요구하는 파기환송을 할 필요 없이 앞서 언급한 논리에 의해 원심의 최종 판결을 확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나온 곽노현 전 교육감에 대한 공직선거법(교육감 선거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해 규율되나 당해 법률이 공직선거법을 많은 부분에서 준용하고 있다) 제232조제1항제1호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유죄 확정판결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대법원이 원심의 법리에는 오해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원심이 진행한 사실심에 따른 사실적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원심의 최종 판결에는 변함이 없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당해 죄가 단순 고의범-상대 후보자에게 금품이나 직위를 제공했거나 제공할 의사가 있었다면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 아니라 목적범-제공 사실이나 의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상대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을 갖고 사퇴에 대한 대가로서 제공했거나 제공하려 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만약 원심이 당해 죄가 단순 고의범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선거 당시 경쟁후보였던 박명기 씨에게 2억 원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는 것만 입증하고 그 제공행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곽 교육감의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대법원은 하급법원이 사실심에서 그 목적을 밝힌 후에 유죄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에서 파기환송을 했어야 마땅하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곽 씨의 부탁을 받아 2억 원을 직접 박 씨에게 전달한 강경선 교수에게 적용된 같은 죄-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대해 원심으로 파기환송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심이 강경선 교수가 금전을 전달했다는 사실만 인정했을 뿐 왜 그 금전을 전달했는지는 따로 밝히지 않은 탓에, 강 교수에 대한 올바른 판결을 내리려면 원심법원이 사실심에서 강 교수의 금전 전달 목적을 밝혀내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심은 곽 전 교육감에 대해서는 사실심에 의해 '곽 씨가 후보자 사퇴의 대가를 지급할 목적으로 박명기 씨에게 2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을 했다. 법리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가 금품이나 직위 제공 행위, 그 시도 또는 의사가 있었다면 그 목적을 불문하고 처벌할 수 있는 단순 고의범이라고 판단한 것과 별개로, 사실심에서 곽 전 교육감이 금전을 전달한 목적이 박명기 당시 후보에게 사퇴의 대가를 지급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사실심에 의한 판단의 변경을 요구할 필요 없이 원심의 이러한 판단만으로도 곽 전 교육감이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의 목적범'이라는 법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라 곽 전 교육감의 유죄와 그 형을 원심대로 확정할 수 있다. 다만 원심의 논리에는 곽 전 교육감이 당해 죄의 고의범이어서 유죄라는 그릇된 법리가 있었으므로 그 법리는 수정해야 하는데, 대법원은 원심의 법리오해를 지적하고 올바른 법리는 당해 죄가 목적범에 해당한다는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곽노현 씨의 유죄를 확정하고 강경선 씨의 혐의에 대해서는 파기환송을 결정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드물지만 엄연히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의 논리적인 판결이다. <법리해석 불확실했지만 원심 판결 확정, 대법 '곽노현 유죄' 아리송한 판결>이라는 제하의 한겨레 기사(링크)에서처럼 일각에서 제기하는 이 판결에 대한 비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원칙을 일부만 제시한 뒤 그 일부분만에 근거한 것으로서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한겨레는 위 기사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목소리라며 "법리가 바뀌면 파기환송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곽 씨에 대해서는 법리가 바뀌었는데도 파기환송을 하지 않고 판결을 확정하고 같은 죄로 기소된 정 씨에 대해서는 파기환송을 해서 아리송하다고 한다. 이 기사만 읽어보면 일견 타당해 보이는 논리다. 하지만 이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원심에 중요한 법리 오해가 있고 그 오해로 인해 사실심에 오류가 있을 때 하는 것이고, 법리오해가 있어도 그로 인한 사실심의 오류가 없어 원심의 사실심리 결과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고 그에 터 잡아 원심의 판결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번 판결에서 강 씨는 전자에 해당했고, 곽 씨는 후자에 해당했다.
곽노현 교육감은 교육정책에 대한 나름의 뚜렷한 생각과 논리,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청사진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반론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고 정책을 '마이웨이'로만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교육감 곽노현'에 대한 평가는 칭찬과 질책으로 갈릴 수 있고, 두 관점은 모두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곽노현 씨의 교육감직 상실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대법원이 곽 씨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그의 유죄와 교육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무리하게 빨리 확정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법원은 개인 곽노현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어설픈 논리로 정당화하려 한 것이 아니며, 곽노현의 범죄사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올바른 법리에 의해 논리적으로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