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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는 생활 속의 크고 작은 다툼에 대한 법적 해석을 확정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확립한다. 또한 판례는 이 책의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듯이 “법전에 건조하게 자리하고 있는 법조문들이 어떻게 현실 사회에 호흡”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창이다. 판례에는 법조문을 실제 사건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 있고,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이 판례를 소설 읽듯이 재미있게 읽기는 어렵다. 어렵고 딱딱한 법률 용어들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더기로 등장하는데다가 판결문에서만 사용하는 다소 어색한 표현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어색한 표현들과 어려운 용어들을 쉬운 말로 풀어 쓰고 긴 판결문을 요약, 정리하여 학생들, 나아가 일반 국민들이 중요한 판례의 핵심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을 추려내면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힌 판결을 다시 부각시킨 점도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판례들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추상적인 면과 구체적인 면 모두에서 확인한 것으로,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판결들이다. 그런데도 법률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법조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잘 모르는 판결을, 법을 멀게만 생각하는 일반인들은 알겠는가? 이 책은 그런 판례들을 다시 소개함으로써 그 판례들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아가 이 책은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희망을 본다. 여러 판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부합하는 정말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수없이 고민해 왔다. 여기서 독자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도 그 본질을 잊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 사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지적하듯 사법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래도 우리나라 법원에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면서 작게나마 웃을 수 있다.
우리나라 법원은 이 책에 실린 판결들처럼 법리에도 맞고 국민의 법의식과도 합치하는, 논리적이면서도 실생활과 가까운 판결을 계속 내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통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언제나 정의는 구현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 판례들이 이 책의 집필진의 바람처럼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살아있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전달된다면, 법질서를 확립하고 법과 실생활과의 괴리도 축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