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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멸의 신성가족 - 김두식

Super:H 2010. 4. 3. 01:24

불멸의 신성가족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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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도유망하고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은 청춘을 희생하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엄격한 서열에 움츠리고, 엄청난 업무량에 치이고,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청탁에 괴로워하느라 제대로 된 판결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사건을 잘 모른 채 판결문을 써내야 하니 재판을 진행하면서 소송 당사자들을 윽박지르면서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십여 년을 살다가 자신이 이른바 전관 변호사가 되면 브로커에게 대가를 주고 사건을 소개받아 터무니없는 수임료를 챙기고, 판사 시절 그렇게도 싫어했던 청탁을 후배 판사들에게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반복되는 현실이다. 어떤 문제가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로 뿌리박히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사회에 뿌리박힌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 어렵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는 강력한 힘으로 구성원들을 장악하여 문제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대다수의 구성원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하더라도 사회의 힘에 압도당해 사회의 흐름에 그저 순응한다. 소수의 구성원이 문제를 인식하여 거기에 저항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 굳어져버린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면 사회적 병폐는 더욱 심화되고,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슬프게도 우리나라 법조계가 이 악순환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모두가 불행한”, 하지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슬프고도 암울한 사회이다. 법조인들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통과한 그들 스스로를 ‘신성(神聖)가족’, 즉 일반 대중이 범접할 수 없는 격이 다른 특별한 집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법조인들이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되어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서 일반 대중과 괴리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서로 옳다고 여기는 자기 생각대로 하려다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법조계는 심각하게 병들었다. 법조계 안팎의 다양한 집단에 속한 이들이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법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이다. 실제로 저자의 연구팀이 연구를 위해 심층 면담한 스물세 명은 판검사와 변호사에서부터 변호사 사무실 실장과 직원과 행정 담당 법원공무원, 송사를 겪은 주부와 건설업체 대표, 결혼정보업체 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지만, 모두 우리나라 법조계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저자가 우리나라 법조계의 암울한 현실을 한 꺼풀씩 벗겨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마다 울컥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은 ‘신성 사회’의 구조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노했다. 장차 판사가 되어 법조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 한 고등학생이 미래의 초임 판사로서 가졌던 야심찬 꿈-상위 서열의 판사와 소송 당사자들의 부정한 입김에 굴하지 않고 진정 공정한 판결을 하겠다는-을 스스로 접어야만 하는 현실이 슬펐다. ‘신성가족’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판사 신분증과 판사로서 갖는 지극히 당연한 꿈을 맞바꾸어야 하는 우리나라 법조계를 비관하면서 말이다.

 

P.S. 그러나 최근 이뤄지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처럼 법조계의 자정 노력이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두운 우리 법조계에도 한 줄기 빛이 보일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지, 아니면 여느 때처럼 주먹구구식 일회성 정책에 그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