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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Super:H 2010. 3. 26. 23:51

멋진 신세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올더스 헉슬리 (문예출판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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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지나친 기술의 발달이 인간다움을 짓밟는 암담한 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 사회는 극소수의 지배자에 의해 통제되는 철저한 계급 사회이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철저하게 세뇌되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실제로는 디스토피아에 살지만 스스로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버나드와 헬름펠츠는 그 조직의 구조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다가, ‘야만인’ 사회의 존을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을 설득시키려 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만 한 버나드나 헬름펠츠와 달리, 존은 그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우매한 대중들은 무엇이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버나드, 헬름펠츠, 존 세 사람을 모두 제거하고 만다.

헉슬리는 20세기 초반 디스토피아 소설의 전개 형태를 충실히 따르면서 기계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진보가 결국 비극을 불러올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소설 속에서 총통은 사회를 위해서는 종교와 고전이 결코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는 모순적인 행위를 하며, 현대 사회에서 헉슬리가 예상한 것처럼 심각한 해악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모순이 나타나고 헉슬리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20세기 초반 작가들은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기술은 인류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류가 이용하기 위해 존재하고 인류를 위해 쓰일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과학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달하면 과학기술 그 자체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지식도 함께 확장된다. 물론 과학기술이 워낙 빨리 발전하기에 사람들의 사고가 그 속도를 따라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과도기에 아노미 현상과 가치 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등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아 더 넓고 깊게 사고하면서 궁극적으로 전 인류를 더 자유롭게 하는 새로운 기술의 활용 방법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인류가 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인류를 속박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더 좋기 때문이다. 핵융합 반응이 처음에는 원자폭탄 제조에 쓰였지만, 지금은 우리를 석유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것이 이에 대한 좋은 예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항상 인간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으므로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과학기술이 완전한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는 없다. 인류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19세기 말~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좋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이며, 현대인이 그 소설들의 암울한 분위기에 휩쓸릴 필요 없이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