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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의 기본권,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위한 독일 연방헌재의 첫 응답: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연방기후변화대응법 일부위헌 결정

Super:H 2021. 5. 1. 19:58

ㅇ 공식 보도자료 보기(영문): 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bvg21-031.html
ㅇ 기사 보기(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93404.html

지난 4월 29일(현지시각),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이하 ‘연방헌재’)는 연방기후변화대응법(이하 ‘기후변화법’) 중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은 부분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일부위헌, 1 BvR 2656/18, 1 BvR 78/20, 1 BvR 96/20). 해당 결정에서 연방헌재는 입법자가 2022년 12월 31일까지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는 입법을 하여야 한다고 명했다. 해당 결정에서 연방헌재가 한 구체적인 판단은 다음과 같다.

(1) 기후변화법 중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한 부분은 청구인들의 존엄권[연방기본법(우리의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법률; 이하 ‘기본법’) 제2조 (2)문*]을 침해하지 않는다. 청구인들의 존엄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입법자는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가진다. 기후변화법이 설정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그러한 입법재량 범위 내에 있다.

(2) 기후변화법 중 2031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은 부분은 청구인들 중 현재 아주 어린 사람들, 즉 미래세대의 사실상 모든 기본권을 제한한다. 이는 국가의 환경보호의무(기본법 제20a조**)를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법 중 해당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기후변화법 중 해당 부분에 따른 미래세대의 기본권 제한은 현 시점에서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어, 이를 엄밀한 의미의 기본권 침해로 보기는 어렵고, 이는 독일 헌법이론상 ‘유사침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법이 정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대로라면, 지난 2016년 파리협약에서 정한 목표대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분을 섭씨 2도 또는 섭씨 1.5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2031년 이후 매우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 그 결과 기후변화법에 따르면 2031년 이후 미래세대의 삶에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 불가피해지는데, 이는 기후변화법이 미래세대의 사실상 모든 기본권에 대한 유사침해를 초래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처럼 국가가 기후변화법을 제정할 때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현 세대의 편익을 앞세운 것은 기본법상 환경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3) 기후변화법 중 2031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은 부분은, 법률에 구체적 요건을 정하지 않은 채 행정부에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할 재량을 부여한다. 이는 포괄위임금지원칙(기본법 제80조 (1)문***)을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법 중 해당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이 판결이 실무적으로는 물론 법이론적으로도 상당한 진보에 해당한다는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사실상 정면으로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현재의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판결은 존엄권과 환경권을 추상적 권리로 보는 독일(과 한국)의 기존 결정례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미래세대가 지는 과중한 부담을 엄밀한 의미의 기본권 침해가 아닌 “유사침해”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에 따라 이 판결에 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모두 가능하다. 하나는 이 판결이 급진적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재 헌법이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유사침해라는 개념을 견강부회했다는 평가다. 다른 하나는 이 판결이 ‘기본권’의 함의와 적용범위를 현재 헌법이론이 허용하는 범위의 최대한으로 확장해 전례 없는 기후변화 시기에 헌법이 수행하여야 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밝혔다는 평가다.

환경권에 관한 선례가 충분하지 않고, 특히 기후정의(climate justice)에 관한 헌법적 평가는 걸음마 단계인 현 상황에서, 두 평가 중 어느 하나에 선뜻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다만, 기후변화는 기존의 헌법이 예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특정 시기의 특정 집단이 아닌 여러 세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실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 판결의 한계를 지적하는 과거지향적 관점보다는 이 판결의 의의를 강조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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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연방기본법 Article 2 영문 번역본(이하 조문 동일)

[Personal freedoms]

(2) Every person shall have the right to life and physical integrity. Freedom of the person shall be inviolable. These rights may be interfered with only pursuant to a law.

** 같은 법 Article 20a

[Protection of the natural foundations of life and animals]

Mindful also of its responsibility towards future generations, the state shall protect the natural foundations of life and animals by legislation and, in accordance with law and justice, by executive and judicial action, all within the framework of the constitutional order.

*** 같은 법 Article 80

[Issuance of statutory instruments]

(1) The Federal Government, a Federal Minister or the Land governments may be authorised by a law to issue statutory instruments. The content, purpose and scope of the authority conferred shall be specified in the law. Each statutory instrument shall contain a statement of its legal basis. If the law provides that such authority may be further delegated, such subdelegation shall be effected by statutory instr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