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균형잡힌 법리를 위해 고민한 타당한 결정: 검찰총장 징계처분 효력정지 결정에 부쳐

Super:H 2020. 12. 25. 12:39

서울행정법원이 24일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대하여 한 정직 2개월 징계처분 효력정지신청을 인용했다(2020아13601). 검찰총장(이하 ‘신청인’) 측이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효력정지를 구했는데 법원이 ‘본안 (제1심) 판결 선고 후 30일까지’ 효력정지 주문을 내서 형식상으로는 일부인용 결정에 해당한다. 다만, 이 결정으로써 신청인의 목적은 사실상 모두 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행정처분의 효력정지를 인용하더라도 그 시간적 범위를 처분 당사자의 권익 보장에 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되도록 줄인 결정을 하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서는 본안 제1심 판결선고시점에 신청인의 임기가 이미 끝나서 설령 이 사건 징계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재판부도 이 사건 신청이 이러한 “만족적 가처분”에 해당함을 결정문 앞머리에 명시한다.

그러나 이 사건 재판부가 편향적이라는 일각의 비난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재판부는 ‘검찰 편’을 들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청인 측이 이 사건 징계처분에 관하여 주장한 절차상 위법사유 일곱 개 중 여섯 개를 배척했고, 피신청인 측이 제시한 징계사유 네 개 중 가장 중한 두 개가 어느 정도 소명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재판부는 주요사건 재판부 분석문건에 관하여 해당 문건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이와 같이 단정적이고 강한 표현은 종국판결(또는 결정)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이 사건 재판부는 신청인에 대한 징계 사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는 ‘정부 편’을 들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신청인이 정치적 중립성을 손상했다는 피신청인의 징계사유 주장에 관하여 비교적 강한 어조로 해당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밝혔다. 관련 사실관계는 신청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외부적 상황이기에, 신청인이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을 손상한 것으로 볼 수 없고 그에 대한 책임을 신청인에게 물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효력정지의 요건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긴급한 필요” 및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의 인정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검찰과 정부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징계처분에 절차와 실체요건 양면에서 적법요소와 위법요소가 공존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신청인의 직무수행에 다소 부적절한 점이 있다고 다시금 강조하면서도, 현 단계에서 그것이 징계처분을 정당화할 만큼의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행정처분의 절차적 위법사유가 하나라도 인정된다면 행정처분의 실체요건이 모두 적법하더라도 그 행정처분은 위법한 것으로서 취소되어야 하고, 이는 행정처분의 효력정지신청을 인용할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원은 행정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는 경우 본안사건 판결문에 행정처분의 실체적 요건에 관한 판단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만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적 엄밀성보다는 신속성과 구체적 타당성이 더 우선하는 가처분사건 결정문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 재판부도, 이 사건 징계처분 절차에서 징계위원회가 검사징계법상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채 신청인의 기피신청을 기각했다는 절차적 위법사유 하나만을 이유로 효력정지신청 인용결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절차적 위법사유에 관한 판단보다도 더 많은 분량을 실체적 사유에 관한 판단에 할애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사건 재판부는 위 각 판단을 제외하면 의도적으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가처분신청 인용여부에 관한 법리적 검토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이번 결정은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의 함의에 관한 깊은 고민을 담지는 않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난번 직무정지명령 집행정지신청 인용결정만큼 ‘좋은’ 결정은 아니게 되었으나, 그 덕분에 본안판결에 준하는 논리적 엄밀성을 확보한 ‘타당한’ 결정이 되었다.

효력정지신청 단계에서 재판부는 확정적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고, 내릴 수도 없다. 본안재판에서 원고 청구를 인용하려면 “증명”이 필요한 것과 달리 가처분에서는 그보다 약한 정도의 “소명”만으로 신청 인용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재판부 또한, 본안판결에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것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1) 적어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징계사유만으로 (2) 절차적 위법마저 있는 징계처분의 효력을 (3) 신청인의 법적 지위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면서까지 유지할 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번 효력정지 결정이 “신청인의 승리”라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이번 효력정지 결정의 논거를 보면 본안사건에서 이 사건 징계처분이 위법해 취소한다는 판결이 나올 것임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안사건에서 이 사건 징계처분의 실체요건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이번 결정에서 재판부 스스로 밝혔듯 추가 심리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사건 징계처분에는 그 절차에서 검사징계법을 위반한 하자가 있고, 해당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이 시작된 이상 행정법 일반법리에 따라 그 하자는 치유될 수 없다. 이번 효력정지결정이 이 사건 징계처분은 본안사건에서 취소될 운명에 놓였다고 확인한 셈이다. 결국 위정자는 더 신중하지 못했던 탓에 화를 자초한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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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효력정지 결정이 나온 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성탄절 연휴가 끝난 28일 월요일에 출근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윤 총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린 일이 많아 결정 직후인 25일 성탄절에 바로 출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윤 총장은 성탄절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로써 윤 총장은 퇴임 후 어떤 형태로든 현실정치에 뛰어들 것임을 천명했다고 본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스토리텔링과 메시지는 정치에서 정책의 본질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두고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