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한 인권포럼 <기억, 기록, 인권: 일본군 ‘위안부’>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6헌마788 결정례가 생각나서 여기에도 소개한다(결정문 전문 보기). 헌법재판의 당위로서의 사회성 내지 정치성(politicalness)의 상징과도 같은 결정례이자, 2차대전 종전 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타임라인과 주요 내용이 사건의 배경으로서 잘 설명되어 있는 결정례이니 일독을 권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문제의 가장 간명한 법적 해결책은 계약해석 일반원칙으로서의 의사주의, 그러니까 ‘모든 계약당사자의 의사가 일치한다면 계약에 사용된 표시와 무관하게 계약의 내용은 그 의사에 따라 해석한다’는 원칙에 의하는 것이다. 이는 전문적인 어휘로 기술되어 있지만 사실... 어려울 것도 없고 법률 비전문가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 법이론적 가치와 지위도 공인된, 논리적으로 쉽고도 탄탄한 해결책이다.
위 결정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 다음 인용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이 사건 협정체결을 위한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8개 항목 청구권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 협정 체결 후 입법조치에 의한 보상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이 글의 논지에서 환언하면, 의사주의 원칙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한일협정의 적용은 없다. 한일협정은 1965년 체결되었고,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건 1990년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한국인의 일본 정부에 대한 각종 재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조약이 체결될 때,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해 조약의 양 당사자가 그 조약의 대상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 정확히는 포함시킬 생각을 못 했다는 - 것은 분명하다.
물론 중대한 사정변경이 인정된다면 당사자가 계약체결 당시 생각지 못한 내용을 계약의 내용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쟁범죄를 스스로 자행한 일본이 “지금 와서 ‘위안부’ 관련 배상을 다 하라는 건 우리한테 너무 큰 부담이니까 사실 1965년에 다 해결하기로 했던 걸로 하자”고 하는 것은 그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주장은 사안의 중대성과 반인륜성을 고려하면 신의칙에 반하는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법리적으로 신의칙은 보충적으로 검토되는 것이고 이 사안은 계약해석으로도 결론을 낼 수 있으므로 신의칙 위반 부분은 상론할 필요도 없다.
사실 헌법해석론으로만 보면 이 결정 반대의견이 다수의견보다 더 정합성이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 역시 위 해석에 따른 대한민국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의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대의견은 그 의무가 헌법상 바로 도출되지는 않으므로 헌법재판소가 그 의무를 헌법재판의 이름으로 선언할 수는 없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 일반론을 깨야 하는 단 하나의 사안이 있다면 바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의무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결정 반대의견의 결론은 이 점에 관한 덜 타당하지만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서 이 글의 결론으로 삼기에도 적절한 바, 그보다 더 적극적인 법적 해결을 촉구함을 재차 밝히면서 이 결정 반대의견 인용문을 결론에 갈음하고자 한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국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재판을 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재판당사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국가적으로 중대하고 개인적으로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의 규정 및 그에 관한 헌법적 법리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건 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헌법과 법률, 헌법해석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에게 그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지켜야 하는 헌법적 한계인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에는 박근혜 정부의 12.28 ‘위안부’ 합의 발표에 대한 헌법소원도 제기되어 계류중이다(2016헌마253). 이 사건의 결론은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내용을 제대로 된 국내법적 절차 없이 강행한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한 위헌확인이어야 한다. 그와 별개로 위 합의의 내용은 일본이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는 한” ‘위안부’ 문제의 비가역적이고 종국적인 해결을 확인한다는 것으로서 그 내용 자체가 위헌은 아니되, 이 글의 전체적인 취지의 연장선상에서 “성의있는 조치”의 해석으로서 ‘위안부’에 관한 문제제기를 이어나가는 토대로 삼으면 된다. 즉, 일본이 아직까지 그 조치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정지조건이 성취되지 않아 바가역적이고 종국적인 해결 역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