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등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조건이고 원동력이다. 갈등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중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는 부정적 개념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할 대상이고 존중해 줄 대상이다. 사실 국민의 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하고 있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서는 모두에게 '자유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등장한 '신계급'별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표출할 언로가 보장돼 있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는 건 그 출발점이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과거의 민주화세력이 형식은 완성됐으나 내실이 부족했던 87년 체제의 한계를 뛰어넘야 한다. 즉, 시민사회의 열망과 요구를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구체화할 수 있는 자체 아젠다와 능력과 논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반권위주의만 내세우면 건강한 정당정치 구조와도 멀어지고 민중의 요구에 대한 책임성도 떨어진다.
3. 최장집 교수는 도덕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본질적으로 고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가려진다고 한다. 부패 척결이 민주주의를 위한 최우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공정한 분배를 차단하는 가장 근본 원인인 부정한 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건 필수다. 그래야 최 교수가 원하는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실현될 수 있다.
3-1. 그래서 난 김영란 전 대법관의 부패방지법을 지지한다. 또한 일정 금액까지는 로비와 정치자금 지원을 합법화하되 그 범위를 넘는 금품 및 향응 수수 적발 시 다시는 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새로운 정치자금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한미 FTA가 처음 추진될 당시 우리 서비스산업에의 충격효과를 강조하면서 제조업(과 농업)을 홀대하고 성장우선-낙수효과 프레임에 기초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최장집 교수의 주장과 달리 한미 FTA 자체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우리나라 정치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제조업과 농업의 내적 발전, 국제 판로 개척 등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을 더 많이 주장할 수 있었는데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낸 것이다.
또한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외부의존 경제의 대안으로 노-사(특히 중소기업)-정 코포라티즘을 통한 내적 발전을 제시한다. 그러나 노조보다는 사측이, 중소기업보다는 정부가 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상 코포라티즘은 그 목표를 다하지 못하고 '강자에게 유리한 결정을 약자가 추인하는' 형태로 퇴색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대안은 위 1번과 2번을 실현하기 위한 참여민주주의적 요소 강화, 그리고 3번을 실현하기 위한 '사민주의적 질서자유주의'다.
(2013/12/25 - 발전적 질서자유주의 비판: '자유'의 '실질적' 평등을 위하여, 2013/12/17 - 맑스주의적 사회주의혁명 비판: 대안은 사민주의와 질서자유주의다 참조)
5.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만 믿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제력 있게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있는 좋은 제도는 그 취지에 맞게 집행·적용해야 하고, 잘못되었거나 없는 제도는 개선과 제정을 촉구해야 한다. 전자는 법원이, 후자는 헌법재판소가 중점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리고 두 기관의 역할을 현실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법과 제(諸) 법조인의 역할 - 그리고 '실질적' 법치주의 - 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