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대법원 통상임금 판례 해부: 진일보한 근로자 권익 증진, 하지만 교묘한 ‘재계 봐주기’?

Super:H 2013. 12. 20. 02:23

꽤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던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결론을 내렸다(2012다89399, 2012다94643).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데, 그동안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한 명시적인 최종심 판결은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시한 사실상 최초의 기속력 있는 판결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의 권리-의무 관계뿐만 아니라 법리 면에서도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통상임금은 사용자 측이 임금을 명목적으로 지급하는 방식보다는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 환경과 형태, 임금 수령 방식 등에 초점을 맞추어 정해져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들이 자신의 근로에 대한 실질적으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부와 고용노동부가 소송 초기 주장했던 것과 달리 이 점을 고려하고 있어 의미가 있으나, 그 정도가 충분치 못해 재계, 특히 대기업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한 부분도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1개월마다 지급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소정의 근로에 대한 대가’임이 인정되며, 따라서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개인의 근무 실적에 기초하여 지급되는 성과급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2) 김장보너스, 명절선물비용 등 복리후생비는 근로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원칙적으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 특정 시점 기준 회사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자에게도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日割)하여 지급하는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3)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사협약은 근로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으로서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어 무효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근로자는 이번 판결의 기준에 따른 통상임금에 기초하여 산정한 퇴직금 중 지급받지 못한 부분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다. 단,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므로 지급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4) 3)에도 불구하고 아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근로자가 사용자 측에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예상할 수 없었던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서, 사용자 측에 대한 신의칙 위반이 되어 허용되지 않는다:
정기상여금의 경우에 한해
② 이 판결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무효임이 명백하게 선언되기 이전에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하였는데,
③ 근로자 측이 그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이들 네 부분 각각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평가한다. 평가 내용 중 잘 모르겠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첨부한 대법원 보도자료를 참조하면 된다. 판결의 핵심을 잘 요약하고 있으면서도 20쪽 분량이라 필요한 내용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2013.12.18.(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보도자료(통상임금소송사건).pdf

1)
   현재 근로자들이 지급받는 상여금은 명목상으로만 ‘상여금’일 뿐 실제로는 호봉, 부서, 근무 연수 등 기본급과 똑같은 요인에 의해 사전에 결정되어 정기적으로 정액이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그래서 1개월마다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기본급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임금과 똑같은 성격을 갖는 급여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 규정의 ‘정기성’과 ‘소정 근로의 대가’는 반드시 1개월마다 기본급의 형태로 지급되어야 함을 내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기상여금은 “근로의 대가로서의 임금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 통상임금의 법적 요건을 충족한다.
   정부의 소송 초기 주장과 사측의 주장은 통상임금이 그 사항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기상여금과 기본급의 성격이 거의 같은 사측의 임금 지급 관행 및 그러한 근로자들의 인식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하는 위법한 해석이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의 이 부분은 당연한 것을 밝힌 것이다. 이상의 이유를 반대해석해 보면, 개인의 근무 성과에 근거하여 개인마다 다르게 지급되는 성과급은 일률성 요건을 결여하고 있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2)
   현재 각종 복리후생비는 정기상여금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점 ― 예를 들어 명절 때 ― 마다 정기적으로 정액이 지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정기상여금과 마찬가지로 사측의 임금 지급 관행이 그렇고, 근로자들의 인식도 그렇다. 따라서 1)과 같은 이유로 복리후생비도 ‘명목만 다를 뿐’ 기본급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다고 봐야 하고, 따라서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대법원은 복리후생비는 단순히 어떤 시점에 회사에 재직 중이라면 모두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소정 근로의 대가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재직 중인 근로자 모두에게 그 특정 시점이 도래하면 함께 지급한다는 것은, 오히려 복리후생비도 기본급이나 정기상여금과 똑같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근로를 했다면 사전에 결정된 액수가 정해진 시점에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퇴직자에게도 일할 지급하는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 기준대로라면,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측은 때가 되면 전 직원에게 복리후생비를 지급했으면서도 그것이 ‘일회성 보너스’라는 이유로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아 왔기에 사측이 원하는 대로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복리후생비’는 사실상 없다.
   그리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측은 명목상 비정기적 보너스라는 이유로 급여명세서상 보너스만큼을 통상임금에서 제하는 등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으로 돌아갈 몫을 축소시키는 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항목을 이용해 온 측면이 크다. 사측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 ―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므로 사측보다는 근로자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맞다 ― 그렇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인정했듯 복리후생비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3)
   바로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 목적에 따라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계약은 노사가 자발적으로 체결했더라도 무효’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노사가 자발적으로 (통상임금에 들어갔어야 할) 상여금을 통상임금 범위에서 제외하는 협약을 체결했더라도 ‘근로자에게 유리하도록’ 그 효력이 법리적으로 없는 것은 맞는 결론이다. 이를 분명히 밝혀 그 법적 선언과 효과를 더 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대법원을 칭찬할 만하다.
   다만 해당 계약이 무효 ― 법적으로 애초에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 라고 하면서, 일단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해야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멸시효를 함께 인정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한 노사협약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받았는데 그 내용이 법적인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게 되었다면, 노사협약의 그 부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까지는 그 부분 합의가 유효했고 따라서 근로자가 추가임금을 청구할 법적 근거와 방법이 없었다가 이 판결로써 비로소 그 근거와 방법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는 ‘이 판결이 있었던 2013.12.18.부터 3년 내’에만 청구한다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계산한 퇴직금 중 받지 못한 부분은 퇴직금 지급 시점으로부터 기산한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추가로 청구할 수 있는 것이 맞는다.
   물론 근로기준법상 노사협약의 한 부분이 무효가 돼도 나머지 노사협약 자체는 유효하고, 그 협약에 근로자 측이 퇴직금에 대한 조항을 직접 명시하겠다고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통상임금에 대한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실제 지급된 퇴직금에 대해서는 그 지급 시점으로부터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본다면 논리가 조금 낫다. 그러나 퇴직금은 통상임금이 결정되고 난 후 그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지 않기로 한 내용이 무효가 되었다면 그 내용 때문에 받지 못한 퇴직금에 한해서는 근로자의 임금청구권 소멸시효는 2013.12.18.에 시작한다. 이 점을 궁색하게 감춘 대법원의 논리는 사측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한 ‘봐주기’ 논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4)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근로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강행법규, 즉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규인데 그 법규의 집행을 신의칙으로 제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많다. 2012다89399 사건에 대한 대법관 3인의 소수의견도 이 점을 지적하며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신의칙도 드문 예외 몇 가지를 제외하면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법의 원칙이고, 강행법규가 언제나 신의칙보다 우선 적용되지는 않으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강행법규지만 공소시효가 지나면 그 강행법규는 적용될 수 없다―,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신의칙으로 근로자의 추가임금 청구권이 제한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했기 때문에 나는 이 부분 판결에 동의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 사건에 대해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중 3인의 보충의견 요지를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노사가 임금협약 당시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으로 인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온 노사 간의 상호 신뢰가 깨지고 쌍방이 의도한 것과 현저히 다른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면, 신의칙을 적용하여 이를 형평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의칙이 수행하는 기능 중의 하나이므로, 신의칙 적용에 관한 다수의견은 충분히 근거가 있고 합리적인 견해다.”
   만약 이번 판결이 아무런 요건 없이 “신의칙 때문에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이유로 한 근로자의 추가임금 청구는 인정될 수 없다.”고만 했다면, 근로기준법이 보장해야 할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측의 신뢰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 그러나 그 해석 원칙이 이번처럼 기존에 사실상 인정되고 있고 광범위하게 효력을 발하고 있던 내용이 무효가 되어 사용자 측의 ‘근거 있었던’ 신뢰와 현저히 달라진 경우에까지 사용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3)의 소멸시효 부분에 대한 비판은, 정기상여금에 관한 한 추가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근로자의 ‘근거 있었던’ 신뢰가 이번 판결을 근거로 현저하게 달라졌기에 그 사정에 맞게 소멸시효를 새로 계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므로 이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
   또한 이번 판결은 위에 언급했듯 분명한 제한요건을 두고 있다.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요건은 차치하더라도 세 번째 ‘경영상의 긴박한 위험’ 요건은 기존의 부당해고·체불임금 관련 판례 다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고 있다. 즉, 근로자의 추가임금청구권은 원칙적으로 보장되며, 예외적인 경우에 엄격한 요건을 만족해야만 사용자가 신의칙을 이유로 근로자의 그 권리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 판결은 1), 3)에 의해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대원칙 아래 사용자가 그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질 정도의 과도한 부담을 지게 하지는 않겠다는 단서를 단 셈으로, 이익형량의 원칙과 규범조화의 원칙을 최대한 조화시키려 노력한 합리적 판단이다.

 

요컨대, 이번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그와 반대되는 노사협약이 무효임을 확인하고 ▲사업자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이에 따른 추가임금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통상임금, 나아가 근로자의 권익을 현실에 맞게 확대했다. 하지만 ▲복리후생비는 정기상여금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같은데도 통상임금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사용자에게는 신의칙을 이유로 신뢰를 보호할 길을 열어두었는데도 근로자에게는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근로자가 근로의 대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통상임금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그것을 완전히 현실화하지는 않았고 재계가 당연히 져야 할 부담마저도 줄여주기 위해 깔끔하지 않은 논리를 내세웠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