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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발전은 국민의 민주의식으로부터: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읽고

Super:H 2012. 7. 11. 00:58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

저자
조기숙 지음
출판사
인간사랑 | 2012-06-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와 과제를 살펴본 책.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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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많이 부족하며, 시민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치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정치학자들과 법학자들이 모여 진행한,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문제점의 발생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담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군정이 심어 놓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전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결합하여 기형적, 편향적으로 출발했다. 거기에 군사정권 하의 성장중심주의와 하향식 정책 결정 및 권위주의적 통치가 더해지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그러나 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는 일념 아래 단결한 국민들이 4.19와 5.18의 실패를 딛고 6월 항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그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군사정권의 잔재를 조금씩이나마 극복해 나가며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 개혁은 근본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지속성이 약했다. 그로 인해 우리 민주주의는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발전된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가도 이내 흐지부지되고, 앞선 정권의 개혁 내용을 후속 정권이 이어나가지 못하면서 민주주의가 답보 상태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는 개혁을 점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협의를 우선시하는 선진적 정당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고, 대중들 사이에는 그들 자신의 주권을 인식하고 그것을 적극 행사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이 싹트지 못했다. 제도적 발전을 뒷받침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민주적 마인드’가 부재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약화된 한국 민주주의의 내연은 지금까지의 개혁 시도가 만든 비교적 튼튼한 민주적 외연을 무색하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방대하고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면서도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은 훌륭한 절차와 제도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며, 그들이 만들어가는 앞선 정치 문화가 민주주의의 근본 요소이다.’ 이 명제는 국회와 청와대와 각 정당에서, 법원에서, 그리고 개별 지방정부에서 모두 유효하다. 민주주의를 직접 구현할 때도, 정치 과정을 법치주의로 견제하면서 민주정치의 확립을 꾀할 때도,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추구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국민중심적’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실정치를 살펴보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단의 구성원의 태도가 변하면 그 집단의 활동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 집단의 외형과 원래 목표가 그대로여도 집단 내 정치적 문화가 변하자 그 집단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변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범국민적 지지를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던 열린우리당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는 평가를 받은 올해 총선 직전의 민주통합당의 차이가 이를 잘 드러낸다.


  애초에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체제이다. 그래서 그 표면에 누가 있든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변화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그 주인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나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물론 실제 정치를 운영하는 이들은 국민 본인이 아니라 국민의 신임을 받은 대표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이 요구하는 여러 종류의 자격을 갖춰야 하고, 그들에게 만족한 국민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의 의사가 국가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저자들의 깨달음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민’ 하나하나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전제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이 전제를 때로는 강제적으로, 때로는 스스로 잊는 바람에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국민이 성숙한 민주의식을 갖춰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난 후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저자들의 제언은 시의적절하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뜻을 우선시한 대통령을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이 5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관리자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주인으로서의 능동적 의식이 필수적이다. 또 선거 후에도 주도권을 잃지 않고 국민을 위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관리자의 잘잘못을 수시로 피드백하는 주인의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국민이 먼저 변해야만 정당과 정치인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