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통일은 하루빨리 이루어야 할 중요한 민족적 과제라고 배워 왔다. 물론 최근 50여 년을 제외한 반만 년의 긴 역사 동안 같은 민족이었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통일의 당위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당위성과 필요성은 다른 것이다.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바로 남북통일이 그렇다. 북한과의 통일은 남한에 너무나 큰 부담을 지우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남한은 오랫동안 엄청난 통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사실 통일 비용은 현재의 남한과 북한 모두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므로 남북한 모두가 부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그것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남한이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통일 비용의 대부분은 생활 기반이 취약한 북한을 위해 쓰일 것이므로, 남한 국민과 정부가 느끼는 상대적인 부담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동서독이 통일된 후 구 서독 국민들이 10여 년간 동독 재건과 동서독 통합을 위해 많은 세금을 부담하면서도 통일 전보다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체감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했던 것처럼 말이다. 도의적 책임과 동정심 때문에 섣불리 통일을 했다가는, 통일 비용으로 인해 남한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 남한 국민들의 원성만 높아지는 역효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또한 남한 국민들은 북한 국민들과 곧바로 융합되지 못하고 겉돌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통일=두 나라 국민들의 정신적 통합’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통일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싸운 뒤 몇 달 간 만나지 않았다고 하자. 싸움의 원인이 정말 미묘한 의견차였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와 다시 만나 화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만나지 못한 시간동안 감정의 골이 서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5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의든 타의든 서로 싸운 후 갈라선 남북한은 하나로 융화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진 언어, 극명하게 다른 사상,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생활과 문화 등 남북한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다. 특히 자유로운 환경의 남한 국민들이 폐쇄적인 환경의 북한 국민들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즉, 통일을 해도 남북한과 남북한 주민들의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는 없다. 통일이 되면 바로 북한 주민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은 많은 남한 국민들은, 이 현실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남북통일은 남한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많은 상처를 남긴다. 이를 원래 한 민족이었으니 다시 합쳐야 한다는 도덕적이고 추상적인 근거로 정당화할 수 없다. 남한 국민들의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통일은 비록 그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현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