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강화도 전적지 투어

Super:H 2008. 7. 8. 19:45
[자료 제공] 강화군청, 문화재청

2008년 7월 8일, 자신의 위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강화도에 남아 있는 치열한 역사의 흔적을 살펴 보고 왔습니다.
Spero spera의 '강화도 전적지 투어', 시작합니다!
(시간은 도착 시간 기준이며, 관광지 사이의 시간은 관람 시간과 이동 시간을 포함한 대략적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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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0 출발
  • 강변북로 → 자유로 IC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 김포 IC에서 진출 → 26km를 달려 강화대교


10:00 강화역사관 - 전시실을 클릭하세요.



11:00 광성보 (사적 제 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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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12:00 덕진진 (사적 제 2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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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효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13:00 초지돈대 (사적 제 225호)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초지진은 사실 '초지돈대'이며,
'초지진'은 원래 초지돈대와 인근 3km 범위 내의 5개 돈대를 합쳐 일컫는 말입니다.
문화재청에 원래의 초지돈대를 '초지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해서
우리에게는 초지진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군사 체제에서 '돈대'는 최말단 단위이며, '진'은 돈대보다 큰 단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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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13:40 양헌수 승전비 (인천시 기념물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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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을 물리쳐 승리를 한 양헌수(1816∼1888)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있는 비이다. 프랑스는 조선 고종 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 삼아 극동함대 소속 군함 7척으로 우리나라를 침입하였는데 당시 순무천총 양헌수 장군이 정족산성에 포수 500여 명을 매복 시켰다가 밤에 기습 공격하여 물리쳤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4년(183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병인양요 때 공을 세워 한성부 좌윤으로 특진되었으며 부총관·금위·어영 등을 거쳐 형조판서·금위대장·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비는 긴 직사각형으로, 윗변을 둥글게 다듬었다. 고종 10년(1873)에 세운 것으로,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15:00 고려궁지 (사적 제 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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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후 강화군에서 군민들의 성금으로 '강화유수부동헌' '강화동종' '외규장각' 등 원래 건물의 대부분을 복원함)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15:30 연무당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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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서문 건너편에 있는 연무당 옛터는 1876년 강화도조약이 최종 조인된 장소이다.
이곳에서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의해 우리나라는 부산,인천,원산을 일본에게 개항하였다.

15:4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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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시간 30분만 가도 이렇게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답니다.
시간이 나신다면 자율 관광 코스로 강화도를 선택해 보세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강화 쌀과 순무, 속 노란 고구마는 강화군민은 물론 전국적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하니
꼭 한 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들을 맛볼 만큼 여유롭지 못했답니다. ㅠㅠ)

지금까지 긴~ 여행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