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재구성

비만, 남 82% - 여 87%는 유전

Super:H 2008. 2. 1. 07:42

[동아일보]

■ 전남대 허윤미 박사팀 쌍둥이 888쌍 유전-비만 상관도 조사

햄버거와 피자를 즐겨 먹는 집. 비빔밥과 김치를 자주 먹는 집. 어느 가정의 아이가 비만일 가능성이 높을까. 첫 번째 집일 거라고 많이들 짐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후천적인 식습관이 비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환경보다 유전이 비만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족의 식습관이나 경제 수준 같은 후천적인 요인보다 타고난 유전자가 비만 여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 비만의 유전 영향 남 82%, 여 87%

전남대 심리학과 허윤미 박사팀은 전국에서 13∼19세의 쌍둥이 888쌍을 모집했다. 각각의 쌍둥이들은 한 가정에서 함께 자란 한국인이다. 연구팀은 우편과 전화로 쌍둥이의 성별과 키, 몸무게를 조사하고 비만지표인 체질량지수(BMI)를 계산했다.

BMI는 몸무게(kg)를 키(cm)의 제곱으로 나눈 값. 18∼22.9면 정상, 이보다 낮으면 저체중, 높으면 과체중이다. 25 이상이면 비만, 특히 30 이상이면 고도비만으로 판정한다.

연구팀은 BMI 값을 토대로 쌍둥이들이 각각 정상이나 저체중, 과체중, 비만 중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를 가린 다음 이를 0에서 1까지의 상관계수로 나타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쌍둥이가 서로 같은 그룹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쌍둥이 중 한쪽이 비만이면 다른 한쪽도 비만일 가능성이 크다.

조사 결과 일란성 남자 쌍둥이의 상관계수는 0.83, 이란성 남자 쌍둥이는 0.33, 일란성 여자 쌍둥이는 0.88, 이란성 여자 쌍둥이는 0.42, 이란성 남녀 쌍둥이는 0.31로 나타났다. 일란성 쌍둥이의 상관계수가 이란성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

허 박사는 “유전자 전체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의 상관계수가 훨씬 높은 건 그만큼 비만 여부가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란성 쌍둥이의 상관계수는 쌍둥이가 아닌 일반 형제자매의 경우와 비슷하다.

연구팀은 상관계수를 통계학에서 사용되는 ‘구조방정식모형’을 적용해 다시 분석해 봤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남자의 비만은 유전의 영향이 82%, 여자는 87%로 계산됐다. 여자가 남자보다 유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체중을 조절하는 렙틴 호르몬의 유전자가 남녀의 몸에서 다르게 조절되는데,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전의 영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남자 18%, 여자 13%)은 환경의 영향이나 측정오차로 볼 수 있다. 허 박사는 “통계학적 분석 결과 가계의 경제수준이나 식습관 등 가정에서 쌍둥이가 공통적으로 겪는 환경이 비만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0에 가깝게 나왔다”며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쌍둥이 각자가 따로따로 겪는 고유한 체험을 뜻한다”고 말했다. 친구와 군것질을 하거나 병에 걸리는 등의 사례다.

이 연구 결과는 비만 연구 전문저널 ‘오베시티’의 2007년 12월호에 실렸다.

○ 유전 외적인 요소는 군것질-질병 등

하나의 수정란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둘로 갈라져 생긴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100% 같다. 한 번에 배란된 2개의 난자가 2개의 정자와 각각 따로 수정된 이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서로 평균 50%만 동일하다. 이렇듯 쌍둥이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비율이 분명하다. 특정 형질이나 질병의 유전적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를 연구하는 데 쌍둥이가 적합한 이유다.

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동양인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비만 연구 중 최대 규모”라며 “서양인 쌍둥이에서도 비만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은 80%대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만 서양인의 비만 관련 유전자는 동양인과 다른 기능을 하거나 종류가 더 많을 수 있다. 서양인의 BMI 값이 동양인보다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평균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과학자들은 여러 개의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쳐 비만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