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12살 소년인데요,
TV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어린 동생이 운다고 나무 야구 방망이로 마구 때려 동생을 죽였답니다.
그 소년의 말에 의하면 동생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때렸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아이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아이의 정신 세계에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지만
넓게 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공공연히 퍼져 있는 이기주의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함께 농사를 지으며,
함께 울고 웃으며 기꺼이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모든 이웃을 포용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데다가
벽과 문으로 단단하게 막혀 있는 아파트에 대부분 살다 보니
최소한 앞집, 윗집, 아랫집 정도에는 누가 사는지 다 알면서도 애써 무관심하게 되고
이웃이 어려웠을 때는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도와 주지도 않았으면서
자기가 어려우면 '관심도 갖지 않고 도와 주지도 않으니 못됐다' 며 이웃을 탓하기 바쁩니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점점 굳어져 가면서 우리 마음 속의 이해와 배려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말과 행동 속에는 무의식 중에 이기심이 먼저 녹아 있습니다.
말로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면서도, 아이가 그 도움을 실천하려고 하면
부모가 먼저 "바쁜데 어서 가자" 며 본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아이는 자꾸만 헷갈리게 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마음 속에는 결국 자신을 위하는 삶이 일단 자신에게 더 이롭다는 인식이
자신의 행복의 기본은 타인을 돕는 것이라는 인식을 밀어내 버리는 것이죠.
아마 자기 동생을 무자비하게 때려 죽인 저 열두 살 소년도
자기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이기적인 태도를 보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익혀 왔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가 일상 속에서 어른들의 언행들을 밥 먹듯이 봐 와서
"나만 좋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것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지금 우리가 타인을 위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우리에게 더 이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삶을 쉽게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간절한 때가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지금 이기적인 태도로 행한다면, 그리고 사회 속에서 그것이 굳어져 간다면
훗날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모두가 못 본 척 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아마 그 때, 미래의 자신은 "내가 그 때 배려심을 가졌더라면.." 하고 후회하겠지만,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 버린 삭막한 인식을 돌이킬 수는 없는 상태가 되어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지금 자신이 남을 돕지 않는다면 나중에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고 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위의 소년도 아이가 '울지 않을 때까지' 때려 준 후에 TV를 더 편하게 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소년은 지금 1급 살인 혐의를 받는 "살인자"가 되어 전 미국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이해와 배려가 지금 자신에게 작은 손해가 되는 것 같아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자신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삭막해질 것입니다.
이해와 배려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위하는 것이지만,
지금과 같이 이미 많이 '개인화' 된 사회에서는 진정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지금까지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작은 이해와 배려라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이건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이해와 배려라도 계속한다면
진정한 "이해"와 "배려"의 의미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