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상태의 비소는 독이 없으나 비소 산화물은 대부분 독성을 띤다. 그 중 아비산이 가장 강력한 독성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비상이다. 비상은 무색, 무취의 백색 분말로, 물에 잘 녹으며, 체내에 흡입되면 조직 세포의 산화를 방해하여 세포의 원형질에 독성을 발휘한다. 비상을 한 번에 치사량 이상 흡입하면 구토, 설사, 모세 혈관 확장, 혈압 감소 등이 일어나며 중추 신경 기능이 마비되어 1~2시간 내에 사망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남편은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의 신으로, 화산의 불을 이용하여 불을 다루던 금속 세공장이였다. 그의 외모는 두꺼운 목에다 가슴에는 털이 많았으며 뒤뚱거리면서 걷는, 큰 체구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얼굴은 지독하게 못생겼다. 왜 대장장이 신은 흉한 외모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을까? 이에 대한 한 가지 답이 바로 비소 중독이다.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은 컴컴한 동굴이었다. 따라서 금속을 제련하면서 자연히 그목 증기에 섞인 비소 화합물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1955년 로스노라는 학자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청동기를 분석해 본 결과, 청동기에 비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으로부터 대장장이들이 자연 상태의 여러 물질에 포함된 비소의 양보다 훨씬 많은 비소를 사용하여 청동기를 제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 의학의 연구에 따르면 비소를 쓰는 합금 제조 공장 근로자의 경우 신경 마비, 지각 이상, 탈모, 색소 침착, 피부 두꺼워짐 등의 작업병을 겪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가 흉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은 대장간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발생한 비소 가스를 흡입한 결과로 얻은 직업성 중독증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헤파이스토스는 작업장에서 품어나오는 비소 증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외모가 형편없어지고, 신경계마저 비정상이 된 것이다.
(출처: 과학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