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선고 후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정경심 교수 제1심 형사재판 판결문을 읽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2. 23. 선고 2019고합738등 판결). 공소사실과 혐의가 많아서 판결문이 570여 쪽에 달해,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판결문을 읽어본 결과 상급심에서 유무죄 판단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고, 다만 인정된 공소사실에 비해 선고형이 이례적으로 중한 것은 사실이어서 양형은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판결 선고 소식을 접한 후 판결문을 읽기 전에 상급심에서 동양대학교 강사휴게실에 방치돼 있던 조국 교수-정 교수 소유 데스크톱PC 2대의 증거능력이 가장 유력한 쟁점으로 다투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해당 쟁점은 실제로 제1심 판결문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이 사실이나, 상급심에서 제1심 판단을 뒤집고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위 각 PC가 압수수색 직전까지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채 3년여간 위 강사휴게실에 방치돼 있었다는 점을 정 교수 측도 다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1심 판결문에 적시된 증거에 의하면 정 교수 측이 위 각 PC를 개인 PC로 사용했고 해당 PC를 사용해 여러 증명서를 위조-변조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해당 PC가 위와 같이 강사휴게실에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은, 압수수색 시점 당시에 정 교수 측이 해당 PC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거나 적어도 강사휴게실 관리자인 조교가 해당 PC를 검찰에 임의제출하는 것을 묵시적으로나마 용인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위 조교가 검찰수사관과 다소간 실랑이를 벌인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위 조교가 위 각 PC를 임의제출한 ‘이후’의 사정일 뿐임을 고려할 때, 위 각 PC의 임의제출 과정에는 위법이 없고, 따라서 위 각 PC의 증거능력은 인정된다.

오히려 제1심 판결문이 드러내는 유의미한 쟁점은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따른 ‘임의제출물’인 전자정보 저장매체(예컨대 하드디스크)를 압수하는 경우에도 같은 법 제106조 제4항에 따라 피압수자, 즉 임의제출자에게 압수물목록을 교부해야 하는지 여부이다. 검찰은 위 각 PC를 임의제출물 압수 형식으로 압수한 후 그 압수물목록을 임의제출자인 위 조교에게 교부하지 않다가, 정 교수 측이 법정에서 이 점을 지적하자 그 후에야 해당 조교에게 압수물목록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위 쟁점에 관한 법리적 해석은 위 각 PC의 증거능력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인데, 이 점에 관해서 명시적 대법원판례가 없어 재판부가 어떤 해석을 채택할지가 판결의 결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사건 제1심 재판부는 (1) 위 제106조 제4항이 압수영장에 의한 강제압수를 할 때 그 피압수자에게만 적용되는 조항일 뿐 제218조에 따른 임의제출물 압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2) 위 제106조 제4항이 임의제출물 압수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경우에도, 임의제출물 압수와 강제압수의 본질적 차이를 고려할 때, 적어도 임의제출물 압수가 적법하다면 위 제106조 제4항 위반은 경미한 위법에 해당하여 이를 이유로 적법하게 압수된 임의제출물이 같은 법 제308조의2에 따른 위법수집증거가 되어 증거능력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전자정보 압수수색은 압수대상 정보를 압수수색 현장에서 특정할 수 없거나 특정하기 어렵고, 이는 ‘전자정보’ 고유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므로 그 압수가 영장에 의한 강제압수이든 임의제출물 압수이든 동일하다. 그래서 전자정보를 임의제출물로서 압수하는 경우를 영장에 의해 압수하는 경우와 달리 보아 전자의 경우에만 위 제106조 제4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제1심 재판부의 주위적 판단[위 (1)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장에 의한 강제압수와 임의제출물 압수의 본질적 성격이 다르다는 제1심 재판부의 판단은 타당하다.

피압수자는 적법한 영장에 의한 압수를 거부할 수 없지만 임의제출은 자의(自意)로 거부할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제출자의 임의제출은 곧 제출자가 제출물에 대한 사후적 탐색에도 이견이 없다는 의사를 묵시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제106조 제4항에 따른 압수물목록 교부는 임의제출자가 이미 동의한 압수에 관한 세부사항을 사후에 통지하는 확인적 절차에 불과하다. 이를 이유로 적법하게 임의제출된 압수물의 증거능력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목적 중 하나인 정의 실현에 현저하게 반한다. 제1심 재판부의 예비적 판단[위 (2) 부분] 또한 그러하다. 결국 상급심이 제1심 재판부의 주위적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예비적 판단까지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에 따라 정 교수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상급심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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