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대한민국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개정된 제9차 개정헌법이다. 이 헌법은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의 토대를 마련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중요한 뿌리다. 이는 약 30년이 지난 현재 대다수 시민들이 공유하는 시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1987년 헌법은 민주화를 쟁취하고자 하는 시대적 열기에 겉만 익고 속은 설익은 불완전한 헌법이다. 민주적 절차를 마련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립에 필수적인 시민들의 기본권은 폭넓게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현대국가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사회국가(social state)임에도 현행 헌법상 시민의 사회권을 다룬 조항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천명하고 국가의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규정한 추상적 조항 두 개(제34조 제1항, 동조 제2항) 뿐이다.
그래서 개헌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헌법을 실생활에 적용할 때 중요한 것은 표면적 자구 자체보다 그 자구의 해석이다. 기본권의 본질적 특성상 적법절차원리와 같이 헌법 문언이 제한적이어도 폭넓게 적용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 있고, 반대로 외국인의 선거권과 같이 문언이 광범위하더라도 다소 좁혀서 해석해야만 하는 내용들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헌법학계에서는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현행 헌법 조항을 전향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사실상 개헌에 다름없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정치학계에서는 개헌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비로소 헌법을 깊이 있게 살펴보기 시작했지만, 개헌에 관해서만큼은 학부에서 전공한 정치학적 관점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한다. 헌법학계에서 강조하는 대로 헌법이 자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은 사실이지만, 헌법 자구의 변경은 국가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 헌법을 시민지향적인 헌법으로 진일보하게 하는 출발점이기에 그러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기본권의 대표선수는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누리는 생명권이다. 생명권은 현행 헌법상으로도 해석에 의하여 존엄권(제10조)에서 파생되는 권리이자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하였지만 경시될 수 없는 권리(제37조 제2항)로서 보장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대로 생명권을 별도의 조항으로 독립시켜 독자적 기본권으로서 보장한다면, 생명권이 가지는 불가침성과 절대성이 더욱 분명하고 강력하게 보장된다.
개헌은 이처럼 기본권 강화의 확실한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시민들에게 유의미하다. 올 봄 정치권은 정부형태에 중점을 둔 개헌 논의를 열띠게 펼쳤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2016년 겨울을 달군 직후임에도 그 논의는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일상 속 기본권에 대한 고민이 빠진 정부형태 논의는 절차적 민주화를 이미 이룬 ‘앞선’ 시민들의 살갗에 직접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18년, 이번 6월에는 선거가 있다. 한반도의 해빙 무드가 무르익는 이 시점의 지방선거라면 ‘지방’선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선거가 시민을 개헌의 주인공으로 다시 격상시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도약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