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안철수를 지지했고 좋아했다. 그가 대선후보직을 사퇴하던 날 저녁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렸듯, 어느 한 쪽도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양당정치의 틀을 깰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안철수는 '기존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수사를 넘어서는, 본인의 색깔을 가진 구체적인 국정운영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그때는 그것이 아직 정치를 잘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치경험을 쌓은 지금의 안철수는 달라야 한다. 안철수는 더 이상 새정치의 아이콘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정치인이고, 국회의원이고, 한 (예비)유력정당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국민이 무엇을 왜 싫어하는지'를 간파했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국민이 좋아할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이 삻어하는 것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포함된다. 새정치의 구체적인 모습을 남의 잘못에서만 끌어낼 게 아니라 자신의 아젠다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는 아쉬움이 많다. 물론 안철수신당이 겪고 있는 인물난 그 자체는 기성 정치체제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 안 의원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물난이 아니라 정책난이다. 기성 정치체제를 정말로 깰 수 있으려면 이미 그 체제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관성을 이겨낼 만큼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당으로서 더 많은 정치인과 지지자들을 끌어올 수 있고, 그로써 좋은 인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안 의원이 지금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은 기존 정치체제에 종속된 양비론(의 정치인 버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약하고, 때로는 부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안 의원의 생각과 의지에는 여전히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고 해도 문제제기만으로는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없다. 정치적 공론장을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인 - 게다가 주목받는 정치인 - 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해답 없는 문제제기는 영원히 미완성이고, 당장 직면할 고통이 두려워서 본질을 꿰뚫어 깨고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제기는 겉의 얼룩을 닦아낸 기존 체제에 다시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는 말만 무성할 뿐 살아있는 정치가 아니고, 안 의원이 내건 새정치의 기치에도 어긋난다. 이념적·정책적으로 정의당과 노동당(구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필자에게도 그것은 믿음직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물론 중도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중간지점이 종착점이 된다면 위험하다. 남을 비판하지만 자기 목소리는 약해서 좌우 양쪽으로부터의 공격을 모두 방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6.4 지방선거와 그 준비과정을 더 지켜보고 기다릴 필요가 있겠지만, 안 의원이 정말 새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필요할 때 확실하게 의견을 내고 그것을 뒷받침할 계획을 공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인 안철수'로서의 울림이 약한 지금의 안 의원은 그가 기대하는 만큼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살아있는 자신들의 표를 자신과 감응하고 생동하지 않는 정치에 주려고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