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두 타자: 'The other'와 'Others'

Super:H 2012. 6. 12. 00:12

  강신주는 레비나스의 논의를 활용하여 타자는 ‘전체’가 아니라 ‘무한’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는 유한한 개념으로서 우리 자신의 세계 안에 있어 우리가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무한은 말 그대로 끝없이 퍼져나가서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와 다른’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타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알 수 없는 무한 속의 존재이다. 반대로 타자를 ‘전체’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오만한 행위이며,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타자를 우리 자신의 관념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를 일컫는 두 영어 단어 ‘the other’와 ‘others’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전자는 무한으로서의 타자에 대응하고 후자는 전체로서의 타자에 대응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단어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두 단어는 모두 둘 이상의 대상을 다루는 글에서 하나의 대상을 다룬 후 나머지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the other’는 글에서 이미 다룬 대상과 다른 특정한 대상 하나를 집어서 일컬을 때 사용하고, ‘others’는 이미 다룬 대상과 다른 나머지 대상 모두를 뭉뚱그려 일컬을 때 사용한다. 여기서 방점은 ‘하나를 집어서’와 ‘모두를 뭉뚱그려’에 찍힌다. 전자는 글에서 아직 설명되지 않은, 즉 독자가 아직 모르는 것들 각각의 개별적 특성에 주목하고, 후자는 그것들의 일반적 특성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전자를 사용하면 대상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하여 그들을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는 반면 후자를 사용하면 대상들의 공통점을 찾아 대상들을 하나의 같은 묶음으로 묶을 수 있다. 이를 좀 더 확장하면 ‘the other’는 ‘무한으로서의 타자’와, ‘others’는 ‘전체로서의 타자’와 연결된다.


  먼저 우리가 타자를 무한에 속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접근한다면, 우리는 타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므로 각 타자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다양한 특성들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the other’를 사용할 때처럼 모든 타자들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와 타자가 다르듯 각 타자들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타자 한 명 한 명을 개별적 인격체로 대우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모든 타자와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타자를 전체에 속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인식 체계 안에서 각 타자의 특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의 특성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체계에 맞게 재구성한다. 그때 우리는 그 특성들 각각을 기억하기보다는 ‘others’를 사용할 때처럼 ‘타자의 특성’이라는 그들의 공통점 하나만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새로 입력된 타자에 관한 정보들을 기존의 인식 체계에 맞게 정리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정보들의 특정 부분―그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있는―만을 선택하여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라내어진 정보는 타자에 대한 종합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마치 타자 전체에 대한 정보인 것처럼 인식할 것이다. 이때 우리에게 타자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하나의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각각의 타자들을 하나의 기준에 맞춰 바라보려다 그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처럼 ‘the other’와 ‘others’는 똑같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되며 그 대상에 포함되는 타자를 설명할 때에도 활용되지만, 완전히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the other’가 나타내는 ‘무한으로서의 타자’는 각 타자의 개별성을 깨닫는 것으로서 타자를 인식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반면 ‘others’가 나타내는 ‘전체로서의 타자’는 타자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으로서 지양해야 할 타자 인식 방법이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전체로서의 타자’의 위험성은 경계하되 ‘무한으로서의 타자’의 중요성은 되새기고, 그것을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실천하기를 소망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