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는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경제체제로 자리 잡았다. 그 동안 인간 사회는 물질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그만큼 더 풍요롭고 더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재산권·소유권 절대의 원칙 아래 인간의 자유로운 사익 추구를 보장하면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충분한 자본을 갖춘 계층에게만 자유로운 사익 추구를 허용해 왔다. 자본주의가 부르주아, 즉 유산자들에 의해 처음 도입되고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는 필연적이다. 부르주아 계층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자본주의를 고안하고 발전시킨 이상, 자본주의가 가진 자들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못 가진 자의 자유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들은 자본이 곧 발언권이자 무기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 사회 전체의 생산은 증가했지만 가진 자들이 점점 더 많은때때로 사회 전체 자본의 증가량보다도 많은사리사욕을 챙기면서 그들에게 돌아가는 증분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사회가 고도화·전문화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최근에는 그들이 사람이 아닌 도구로 전락하여 정당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땀흘려 이룩한 성과를 소수의 유산자들이 독차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체제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자본만이 새로운 자본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전체 부의 20%를 차지한 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최상위 1%와 나머지 80%를 나눠 가져야 해서 늘 쪼들리는 절대 다수 99%로 양분되고 있다.

이는 99%1%의 갈등을 촉발하여 사회를 분열시킨다. 게다가 갈등 속에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1%99%를 자극하면 그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자본주의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미국발 월가 점령 시위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그 해결책을 논의한 올해 다보스 포럼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이상에서 현재 자본주의가 그 본질적 원인 때문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흔들리고 있는 자본주의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구조적이어서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록 지금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현재의 자본주의는 지금껏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인간 사회에 그나마 최적화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자본주의는 19세기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며, 당시의 재산권 절대의 원칙 대신 재산권 공공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아무런 제한 없는 무조건적 사익 추구를 공익을 위해 부족하게나마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 현재의 자본주의는 이상적 최선책은 아닐지라도 현실적 차선책이며, 부정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체제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자본주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를 유지하되 정부가 일정 부분 개입하여 전 국민의 복지를 보장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수정자본주의, 나아가 시장이나 국가 어느 한 쪽에 의존하지 말고 기업부터 모두를 위한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자본주의 4.0 등의 개념이 이 인식을 바탕으로 나왔다. 이들 개념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그래 왔듯 기본 틀은 유지한 상태에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방향 수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시장의 행복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만큼, 자본주의가 자본의 효율적 분배를 통한 배분적 정의와 실질적 평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배분적 정의와 실질적 평등이란 평균적 정의와 양적 평등과 달리 각 개인에게 필요한 양만큼, 즉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더 많은 몫을 받을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으로,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몰락하고 있는 작금의 위기에 반드시 필요한 복지 이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존 자본주의의 수혜자들, 즉 가진 자들과 기득권층이 다수의 중산층·하층민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그들이 가진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부가 워낙 막대한 만큼 그들이 조금만 나눠도 국가가 상당량의 공적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복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경우 국가가 세금 형태로 이들의 재산을 강제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재산의 일부를 내놓은 것이므로 정부의 개입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재산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기득권층이 그들의 부를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려 하는 것은 그들의 이기심과 욕망 때문이며, 이것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이것은 억누를 수 없고, 억누른다 해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사익보다 공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요하며 양적 평등을 역설한 공산주의가 결국 몰락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진정 이기적인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이타적이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직·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리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려면 그들도 나와 나눌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이익이 필요하고, 타인이 아닌 와 나눌 수 있을 만큼 나에 대한 선의가 있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적이기 위해서 이타적이어야 한다.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

그래서 가진 자들은 그들 자신의 부와 기득권,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그들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지금껏 모른척했던 대다수 민중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대중적 이미지가 좋아져 그들 스스로 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근간인 시장경제 체제를 해치지 않고서도 그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 개선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능동적 나눔이 현재 자본주의가 봉착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정부와 기업 차원의 지향점 수정 역시 결국은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만큼, 각 개인특히 나눔의 역량이 있는 개인이 바뀌어야 앞서 언급한 신수정자본주의, 자본주의 4.0 등의 구조적 해결책이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개인들의 행복을 위해 개인들이 변할 때, 자본주의는 물질만능주의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인본주의적 경제체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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