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언어는 어째서 인간의 사고를 지배할까

Super:H 2008. 7. 8. 20:33
[출처] 이지논술

“어휘를 줄이면 의식의 범위도 좁아지겠지” (조지 오웰, 1984)
언어는 어째서 어떻게 인간의 사고를 지배할까


○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한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인류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인간의 삶이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을까? 언어는 인간의 삶에서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언어에는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언어는 개방적이고 무한한 체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반드시 보았거나 들은 것, 존재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용, 봉황새, 손오공, 유토피아….’ 등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나, 나아가서는 ‘희망, 불행, 평화, 위기……’라든가, ‘의문,제시, 제한, 효과, 실효성…’ 등과 같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까지 거의 무한에 가깝게 표현할 수가 있다. [김광해, ‘언어의 본질’]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면 자유, 평화, 천사 등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언어를 통해 인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 언어가 없으면 사고의 폭이 줄어든다

인터넷이나 TV에서는 무심코 언어를 축약하거나 조작하는 일이 흔하다. 물론 좀 더 편리하게 쓰려고 그러는 것이지만, 언어의 축약과 왜곡은 생각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 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다른 곁뜻은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조지 오웰,‘1984’]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언어를 폐기하고 신어를 만드는 것은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없고. ‘자유’가 없는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984’에서처럼 이 세상의 모든 느낌이나 감정을 ‘좋다’와 ‘나쁘다’라는 두 개의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인간의 감정은 사막처럼 메말라 버릴 것이다.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노래하고 있는 섬세한 감정들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언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언어를 통해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거나 대상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일찍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마르코만 인()들과 싸우게 되었을 때, 그는 군대를 적지에 파견함에 제하여 그의 병사들에게 말하되 “나는 너희에게 내 사자()를 동반시키노라!”고 하였다. 이에 그들은 수중지대왕()이 반드시 적지 않은 조력을 할 것임을 확신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자가 적군을 향하여 돌진하였을 때 마르코만 인들은 물었다. “저것이 무슨 짐승인가?” 하고. 적장이 그 질문에 대하여 왈 “그것은 개다. 로마의 개다!” 하였다. 여기서 마르코만 인들은 미친개를 두드려 잡듯이 사자를 쳐서 드디어 싸움에 이겼다. 마르코만 인의 장군은 확실히 현명하였다. 그가 사자를 개라 하고 속였기 때문에 그의 졸병들은 위축됨이 없이 용감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그 실체를 알기 전에 그 이름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진섭, ‘명명 철학()’]

사자를 개라고 속여 승리했던 마르코만 인의 장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대상을 이해하기에 앞서 이름에 의해 지배된다. 이처럼 언어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하고 이름을 통해 대상을 왜곡하기도 한다.


○ 언어는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서 함께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것()을 먼저 하겠다.”

자로가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 선생님의 우원()함이여. 어찌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말씀인가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칠도다,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에 순서가 없게 되고, 말에 순서가 없게 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며, 예악이 실행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게 시행되지 않는다. 형벌이 적절하게 시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름을 바로하면 말을 순서 있게 할 수 있고, 말을 순서 있게 하면 반드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군자는 그 말에 구차한 바가 없을 뿐이다.”
[‘논어()-자로()’]

언어는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것이 아닌 만큼 고치기도 어렵다. 잘못된 언어는 인간의 의식과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명칭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려 했던 유가 사상가들의 고민과 노력을 오늘날에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김은정 ㈜엘림에듀 집필위원 엘림에듀 대치 직영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