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맨(38)은 그의 음악처럼 맑고 화장한 4월의 봄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2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터틀맨은 4일 오전 발인,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연화장으로 옮겨져 한 줌의 재가 됐다. 즐겁고 밝은 노래만을 부르던 고인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슬픈 통곡 소리가 함께 했다. 구슬픈 목탁 소리는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듯 영결식장에 울려퍼졌고 유족들의 오열로 영결식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4일 오전 10시 40분부터 거행된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본명 임성훈·38)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불교식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그의 유족과 거북이의 여성 멤버 금비·지이가 함께 했다. 영정 사진 속 터틀맨의 모습은 그의 음악 처럼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유족들은 쉽게 그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아버지에 이어 심근경색으로 둘째 아들은 잃은 어머니의 통곡 소리는 목탁소리와 함께 가슴을 후벼팠다. 금비·지이는 사흘 동안 내내 흘렸던 눈물도 모자랐는지 또 함께 부여 안고 울기 시작했다. 지이는 "죽는 순간까지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며 "한 가정의 아들이자 가수이자 회사의 경영자로서 한 순간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과 따뜻한 인간애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셨기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추도사를 읽어내려가며 하염없는 눈물을 닦았다. 금비 역시 "가수로서, 프로듀서로서 만들어 주신 밝고 경쾌한 음악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마지막 감은 순간까지 편안히 눈 감으시기 바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병원을 빠져 나간 터틀맨의 시신은 가족들의 오열 속에 한 줌의 재가 됐다. 지난 2005년 4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세 차례나 대수술을 받았던 터틀맨은 담당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무대에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지만 노래하고 싶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앨범을 만들때마다 마지막 앨범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음반을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심근경색은 완치가 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 혈관을 정기적으로 확장시켜주는 시술을 6개월에 한 차례씩 받아야 하며 한 번 시술 시 3개월 가량을 누워서 지내야 해 터틀맨은 치료 보다는 무대를 택했다. 그는 생전에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살면 지금도 누워서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의미없이 병만 치료하느라 내 인생을 다 보내는 것 보다는 위험하더라도 음악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4집에서 큰 사랑을 받은 거북이의 '비행기'는 터틀맨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서 떠올린 멜로디다. 그는 “수술한 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환청처럼 멜로디가 들렸다. 라디오를 켜놓은줄 알았는데 내 귀에만 들린 소리였다. 퇴원 이후 곡을 쓸 때 그 멜로디를 떠올리면서 썼다”고도 밝혔다. 터틀맨은 병마와 힘든 싸움을 하면서 오히려 더 밝은 음악을 만들어 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유한한 삶을 비관하기 보다는 즐거운 노래로 대중들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올해 발표한 5집 '오방간다'에서도 대표곡 '싱랄라'를 발표, 즐거운 삶을 노래하기도 했다. 38세의 터틀맨은 아쉽게 세상을 떠났지만 즐거운 삶을 노래한 그의 유작들은 팬들의 가슴 속에 오래 추억될 것이다. 영정 사진 속 터틀맨은 그의 음악처럼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경란 기자 [ran@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