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재구성

“성적 못내는 학교 문닫아라” 세계는 공교육 혁명중

Super:H 2008. 1. 3. 19:40





--유럽 교육경쟁력 강화 몸부림

《지난해 12월 27일 미국 뉴욕 맨해튼 111번가에 있는 공립학교 ‘PS 101’. 학교 건물 정면엔 보수공사를 하는지 보행자 보호용 가림막이 쳐 있어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이 학교는 뉴욕 시가 지난해 12월 초 퇴출 대상 학교로 발표한 공립학교 6개 중 하나다. 유치원부터 8학년(한국 기준으로 중학교 3학년)까지 6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는 ‘PS 101’이 퇴출 대상으로 결정된 것은 뉴욕 시가 공립학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종합평가에서 F학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뉴욕 시의 발표 이후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교장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며 “일단 2008년부터 6학년(한국 기준으로 중학교 1학년) 신입생을 받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공교육의 양극화와 학생들의 실력 저하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이 이제 뉴욕을 시작으로 학교 퇴출이라는 극단 처방까지 내놓는 공교육 혁명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인성교육과 평준화를 강조해 온 일본과 유럽까지 전 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에 휩싸여 있다.》

○ 미국의 뉴욕발() 공교육 혁명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2002년 취임하자마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 독점을 견제하는 등 반독점 검사로 이름을 떨쳤던 조엘 클라인 씨를 교육감으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 뉴욕 시 공교육에 경쟁을 도입하고 투명성을 확대하는 등 공교육 수술에 나섰다.

전임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뉴욕의 치안을 개선했다면 블룸버그 시장은 총체적으로 무너진 뉴욕의 공교육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블룸버그 시장의 주도 아래 추진된 뉴욕 시 공교육 개혁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말 공립학교 1200여 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종합평가였다. 뉴욕 시는 학생들의 성적, 출석 현황, 학부모 학생 교사의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모든 학교를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겼다.

A등급 학교는 추가 예산 지원과 함께 교장과 교사들이 성과급도 받을 수 있지만 D와 F학점을 받은 학교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교장과 교사진이 전면 교체된 뒤 새로운 학교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클라인 교육감은 “6월까지 추가 퇴출 대상 학교 14∼20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D나 F 성적표를 받은 150개 학교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블룸버그 시장의 개혁조치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는 긍정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수학에서 합격점을 받은 초중학생이 65%로 5년 전 40% 안팎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흑인과 백인 학생 간 학력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뉴욕발 공교육 개혁은 공교육 실패의 대명사로 불리는 수도 워싱턴으로 파급됐다.

에이드리언 펜티 워싱턴 시장은 지난해 한인 교포 미셸 리 씨를 신임 교육감으로 임명해 워싱턴 교육개혁을 맡겼다. 리 교육감은 성적이 부진한 공립학교를 폐쇄하고 교장에게 학교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등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공교육 개혁은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제정된 ‘낙제학생 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에서 시작됐다.

NCLB는 초중고교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연방법으로 학생들의 실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2년 연속 일정 학력기준에 미달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 전학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시스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요즘 미국에서는 주별로 학생들의 영어 수학 과학 실력 등을 평가하는 표준시험이 매년 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시험결과는 학생 부모에게 개별적으로 통보되기도 하지만 학교 차원의 성적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 성적을 높인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제도를 채택한 주도 늘고 있다. 지난해 6월까지 모두 13개 주가 이런 성과급제를 채택했다. 뉴욕도 지난해 10월 성적 향상 목표를 달성한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 일본, “이젠 여유가 아닌 경쟁력”

해마다 사립중학교 입시가 몰린 2월 초순이 가까워 오면 일본 도심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텅텅 비어 간다. 학부모로부터는 “감기로 결석한다”는 연락이 오지만 학교 측은 “입시 준비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지난해 도쿄 등 수도권 4개 광역단체에서 사립중학교 입시에 응한 초등 6학년생은 사상 최고인 5만2000여 명. 단순 계산으로는 6학년생 5명 중 1명꼴로 입시를 치렀다는 계산이 된다. 사립중학교는 전체의 6%가량에 불과하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제도인 일본에서 학생들이 공립을 외면하고 사립학교로 몰리는 이유는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감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 정부가 시작한 ‘유토리(여유) 교육’ 노선에 따라 중학교 교과서는 형편없이 얇아졌고 수업시간도 줄었다. 반면 사립학교는 비록 학비가 6, 7배나 비싸지만 주 6일제 수업을 유지하거나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등 교육의 독자성을 추구하고 있다.

유토리 교육은 학생들을 주입식 교육에서 해방시키고 종합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키운다는 교육 원칙. 2002년 4월부터 주5일제와 더불어 시행된 제8차 학습지도요령은 그 결정판으로 학습내용(30%)과 수업시간(7%)을 대폭 축소했다.

특히 중학교에서는 기본 수업시간이 줄어든 데다 커리큘럼의 4분의 1이 스스로 공부할 내용을 찾아 학습하는 ‘종합학습’과 선택과목에 배분되면서 국어 영어 수학 등 필수과목이 밀려났다.

이런 유토리 교육 비판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0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고1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였다. 3년 전에 비해 일본의 순위가 현저히 떨어지자 “경제의 ‘잃어버린 10년’보다 공교육의 ‘잃어버린 30년’이 더 심각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문부과학성은 학습지도요령 개정에 들어갔다. 30년간 유지해 온 교육노선이 당초 취지와 달리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공교육 붕괴를 낳고 있다는 지적에 결국 교육정책의 방향을 돌렸다.

올해 3월경 공시를 거쳐 2011년부터 실시될 예정인 개정 학습지도요령은 초중학교의 수업 시수를 늘리고 필수과목을 충실화하는 대신 ‘종합학습’을 대폭 줄이고 초중학교를 연계해 일관교화를 추진하는 등 공교육 부활을 노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1977년 이래 줄기만 했던 초중학교 수업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30년 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한 교육개혁법안의 핵심도 교육경쟁력 강화였다. 10년 기한의 교원면허 갱신제 도입과 우수교사 성과급 등 인센티브 도입, 신규 교사의 20%를 다른 직종에서 충원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 유럽도 더는 무풍지대 아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지난해 12월 앞으로 10년간 추진할 교육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중등학교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중등학교졸업자격시험(GCSE) 성적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는 폐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GCSE 과목 중 영어 수학을 포함한 5개 과목 이상에서 C 이상의 성적을 얻은 졸업생이 30%에 미달하는 학교는 2013년까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는 현재 잉글랜드에서만 전체 공립학교의 5분의 1인 670여 개에 이른다. 이들 학교는 5년 후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민간이 후원하는 대안학교인 ‘아카데미’로 전환하거나 폐교해야 한다.

브라운 총리는 지난해 6월 취임 당시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첫째 역점 과제는 바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현행 16세인 의무교육 연령을 18세로 상향 조정하고 교육 예산을 2배로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1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중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는 교육개혁에 착수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40%가 읽기도 쓰기도 계산도 제대로 못한 채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줬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사비에 다르코스 교육장관에게 획일적인 중학교 교육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스는 과거엔 독일처럼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일반계와 실업계로 나눴다. 그러나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 민주화 바람과 너무 이른 나이에 학생의 적성을 정해 버린다는 비판에 따라 1975년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 일반·실업계로 나누는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후 학력 수준과 적성이 다른 학생을 한 교실에 넣고 똑같은 수업을 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논란이 계속됐다. 사르코지 정부는 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의 학력 수준과 특성에 맞춰 더욱 다양화된 수업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출처: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