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일 위안부문제 합의는 정치적으로는 괜찮은 성과라고 본다. 일본이 '강제동원'과 '배상'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인정할래야 인정할 수 없었을 지금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이 이상의 합의가 나올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정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이로써 헌재가 확인한 한일청구권협정 조항 상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 대한 위헌적 부작위 상태는 해소됐다. 이번 회담에서 문제의 핵심인 법적 문제는 애초에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게 아니라) 그냥 논외였다고 한국 외교부-일본 외무성 양측이 공언했고, 불가역적 해결을 한다고는 했지만 거기에 '성실한 이행'이라는 전제를 걸어 놓았으니, 추후에 전향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전제를 명목으로 법적 문제에 대해서 다시 얘기할 수 있는 여지도 열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긍정적인 평가는 여기까지다. 이번 합의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는 것이고 '외교문제로서의' 위안부문제 갈등이 봉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위안부문제 그 자체가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일본이 진짜 사죄와 기금 조성을 약속한 것을 정말 약속한 대로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감시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노력이 오히려 더 필요해진 것 같다. 일본이 진실성 있는 노력을 계속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금전보상과 사죄의 말로 회복되는 게 아닌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는 계속 기억되어야 하고 알려져야 한다. 그래서 세계 최장기 정기집회 기록을 깨고 있는 수요집회와 같은 시민사회의 노력이 특히 더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마련될 기금을 피해자 개개인들에 대한 지원 외에 시민사회의 그런 노력을 지원하는 데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강제된 개인들의 모든 희생은, 역사적 평가와 정치적 사후처리와는 독립적으로, 아프지만 그래서 더 진실된 기억으로 오롯이 남아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노력은 거의 끝났는데 시민사회 차원의 노력은 오히려 더 커진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번 회담에서 아베가 - 우리가 보기엔 아직도 부족하지만 -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 정말 일제의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꿔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변화는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안보동맹 및 대아시아 영향력 공고화를 꾀하려는 미국의 무언의 압박 때문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를 매개로 한일간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 간의 역사 차원에서는 안정되었으나 그와 동시에 미국과 (이미 연계돼 있기는 했지만 더 직접적으로) 연계된 진정 '정치적'인 문제로 그 격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곧 한일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최대한의 노력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 파생되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는 좋든 싫든 비국가행위자들이 Track II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교와는 별개인 국내정치와 정의(正義) 차원에서 그 남은 해결과정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 이어 읽기: 2015/12/31 - 위안부 문제, 본질은 이제 시작이다: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청와대 대국민 메시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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