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선에서 51.6%나 득표한 걸까? 또, 51.6%나 득표한 사람이 어찌 감히 이렇게 행동한 걸까?


2-1.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시 청와대가 기업들을 압박했음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두 재단에의 최초의 출연행위에 관한 한 기업들에 뇌물죄의 죄책을 묻기에는 논리적 어려움이 있다(뇌물공여의 고의 조각 가능성). 그러므로 기업들의 뇌물죄 수사 및 이미 기소된 이재용에 대한 공소유지는 (1) 두 재단 관련해서는 기업들에게 거부권이 있었다고 볼 수 있었던 청와대의 증액 요구 이후 추가출연행위 및 (2) 이재용의 정유라 말 구입 비용 지원 등과 같이 재단과 무관한 여타 자발적 지원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돼야 한다. 헌재가 기업의 재산권 침해를 언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강조하건대, 헌재는 일련의 과정에서 기업의 책임이 면제된다거나 경감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과연 법원이 전통적 뇌물죄 법리를 변경하여 재단 관련 모든 출연행위까지 뇌물로 보는 적극성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2-2. 물론 이상의 모든 경우에 대해 박근혜와 최서원에게 수뢰죄의 죄책을 묻는 것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설령 결과적으로 재산권 '침해'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직무와 관련해 대가를 걸고서 뇌물을 요구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의 사고로도 그렇고 법리적으로도 그렇다. 박근혜와 최서원이 다툴 수 있는 유의미한 쟁점은 '난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를 약속한 적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데, 이에 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3-1. 헌법수호의무 및 국가공무원의 성실의무에 대해서, 해당 의무들이 그 본질상 추상적이니 구체적 상황에 해당 조항의 직접 적용할 수는 없다는 판시는 무책임하다. 해당 의무는 결국 주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위임받은 공복들로 하여금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게 하는 것으로서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다. 그렇다면 헌법상 명문의 규정이 있는 이상, 그 규범적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어떤 경우 이 의무를 위반하게 되는 것인지 밝혀 둘 필요는 있다. 이 의무의 본질적 추상성은 "이 의무 위반만으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헌법재판소가 파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여 사법부의 개입 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써 충분히 밝힐 수 있다. 추상적 의무라는 이유로 사법부가 전혀 개입하지 않을 때 그 의무는 말 그대로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는 '추상적 의무'로 전락한다.

3-2. 생명권 규정이 없는 현행 헌법상 바로 특정 상황에서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과하기는 어려우므로 다수의견은 현행 법체계 내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합치하는 결론인지는 의문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개헌 논의 중인 국회 개헌특위는 개헌안에 국민의 생명권 및 국가의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를 명시하는 쪽으로 합의를 이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헌법개정안이 공포된다면, 생명권에 관해서도 위 3-1과 같은 구체화 가능성과 필요성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정치학도로서는 그 구체화가 규정 유무와 무관한 당위라고 생각하지만, 법학도로서는 규정이 없는데 이러한 당위를 끌어내는 건 법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4-1. 결정문 말미에 나오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개헌론으로 귀결되는 것을 놓고 박근혜의 잘못은 헌법 잘못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보충의견의 일면을 전체로 부당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안 재판관이 개헌 이야기를 다소 길게 하고 있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분명해진다면 박근혜 같은 악의를 품더라도 그 해악을 막거나 줄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4-2. 4-1에 관해 지금 헌법에도 그런 장치가 충분히 있고 다만 그 장치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는 재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장치들이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87년 헌법에서 경시됐던 국민의 사회경제적 기본권 및 국가의 해당 기본권 실현의무를 더 구체화하여 강화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이는 위 3의 논지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전환을 위해서는 실제 개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행 헌법의 빈틈을 새롭게 채워넣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곧 사실상의 개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총체적인 재해석을 의미한다. 이제 87년 헌법이 너무 급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빈틈을 메우는 보완책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안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박 대통령의 파면이 그 증거임을 보이는 글로 읽으면 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PREV : 1 : 2 : 3 : 4 : 5 : 6 : ··· : 729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