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헌라3 (헌법재판소 2015.11.26. 선고) 결정요지 보기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사법적극주의의 한계를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 11월 26일자 헌재 결정이 나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간 갈등은 누가 봐도 국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인데 대통령이 국무회의만 거치게 했거나 2009년 미디어법 파동 때처럼 표결 과정에서 명확한 절차적 위법이 있지 않는 이상 법원이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갈등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 또는 행정조치의 내용에 대한 시대적 합목적성을 판단함으로써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것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직접'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재나 대법원이 위헌을 선언하고 무효화한 법률이나 행정조치라고 하더라도 국회나 대통령이 다시 입법화할 수 있다는 것 - 제반 사정이 변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다시 헌법재판소에 이를 갖고 올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다시 위헌 결정을 하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그 가능성이 닫히지는 않는다는 것 - 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영역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않고 이 사건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각하하기로 한 다수의견은 타당하다. '제3자 소송담당' 관련 논의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헌재)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관해서는 그 자체로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 논의를 법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다만

"국회의 동의권이 침해되었다고 하여 동시에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다고 할 수 없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국회의 대내적인 관계에서 행사되고 침해될 수 있을 뿐 다른 국가기관과의 대외적인 관계에서는 침해될 수 없다. 따라서 피청구인 대통령이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심의ㆍ표결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

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다. 조약은 국제법이지만 국제법도 국내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약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은 조약의 국내 효력이라는 국내 이슈에 대한 심의·표결권과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동의권이 침해됐다면 심의·표결권도 침해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판단이 이 사건 결정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는 국회의 동의권과 심의·표결권을 헌법적으로 다르게 다룰 수 있어서가 아니다. 위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권 행사를 방해했는지 아닌지 여부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판단 영역이 아님을 보인 바, 헌법재판소로서는 동의권과 심의·표결권이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후자에 대한 판단도 각하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이 헌법재판소가 본안 판단을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해도 권한쟁의심판청구는 기각하는 것이 맞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WTO 개정조약은, 이미 1994년에 국회에서 비준을 받은 기존 WTO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분적인 개정만 된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개정조약은 이미 동의를 받은 내용의 범위 내에서 부차적 변화만 초래하는 것이므로 국회의 재표결을 거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이 사건에선 국회의 조약에 대한 대외적 동의권 및 조약의 국내 효력에 대한 대내적 심의·표결권도 침해되지 않는다.

 

+덧.
아울러 11월 26일자 헌재 결정 중에는 9:0 만장일치로 "사후에 무연고 시신이 되더라도 해부용 시체로 제공되는 것에 반대한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해부용 시체로 제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최초의 사례"도 나왔다(2012헌마940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1항 위헌확인). 이것도 사회적 약자의 기본적 권리를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확인하고 보호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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