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즘과 검열과 (사회적 의미의) 혐오의 공통점은 강자가 약자에게 강자의 생각을 강요하면서 행사하는 폭력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마초나치나 여성혐오나 페미니즘에 대한 검열은 있어도 '페미나치'나 '남성혐오'나 반페미니즘에 대한 검열은 존재할 수 없다. 후자는 조어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지금 우리 사회 구도와는 정반대인 사회가 있다면 전자와 후자의 존재가능성도 정반대가 되겠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 구도에서는 그러하다.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어보라고 요구하는 외침은, 강자가 그런 외침에 귀를 막고 있거나 완전히 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과격할 수밖에 없다. 그 과격함은 약자 입장에서는 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자유, 그리고 때때로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므로 비난할 수도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150만이 모인다는 광장에 국민의 5%를 넘게 차지하는 장애인들의 접근권은 없다는 장애인들의 날선 비판이 그렇고, 디오씨의 노래 가사 때문에 그들의 광장 공연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그렇다. 전자는 시민들로 하여금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한 보다 넓은 이동통로를 열게 했고, (여전히 공연장 바로 앞이 아니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광장 공연 스크린에 수화통역을 띄웠다. 누구도 이것이 장애인의 비장애인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디오씨 논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디오씨의 공연이 광장에서 배척된 것은 디오씨에게 검열이 가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들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오랜 자기검열을 해제하고 마땅히 해야 할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디오씨가 검열당했다며 온라인을 달군 의견들은 정작 당사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 어떻게 생각했는지야 알 길이 없지만, 정작 디오씨 자신들은 그 광장에 아티스트 자격을 포기하고 개인 자격으로 나옴으로써 이 문제제기의 정당성을 묵시적으로나마 인정했다. 

최근 <SNL코리아>에서 불거진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성추행 논란의 가해지목인은 비난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해지목인이 프로그램 진행자-게스트, 즉 프로그램 내 권력이라는 다른 강자-약자 프레임 속에서 약자를 괴롭게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인간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거봐, 남성혐오도 있다니까!' 운운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라서 문제인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위 사례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은 과시적이어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약자의 강자에 대한 폭력은 기본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어서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임을 다시금 알려주는 사례다. 만약 문제의 <SNL코리아>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가해지목인을 밀쳤다면, 누구도 그들의 폭력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폭력이 혐오나 신체검열이라고 깎아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SNL코리아>의 피해자들이 놓였던 바로 그 위치에 놓여 있다. 그 현실을 제대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한동안 억눌렸던 약자였고 여전히 약자임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제 목소리가 크니까 강자 아니냐고? 기말 성적 클레임 걸러 갔을 때 목소리를 크게 내는 쪽은 학생이지만 그렇다고 학생이 강자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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