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 2: 사회과학도로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쓰는 평론입니다. (그래서?) 좀 길기도 합니다.

0. 이 영화에 좀비가 나온다는 것은 다들 알 터인데, 정작 왜 좀비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고 KTX에까지 침투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물론 설명이 나오기는 하는데, 1에서 볼 주제와 그 설명이 상당 부분 연결된다는 - 연결되어야 -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설명이 2-3분 정도는 더 자세하게 나올 필요성이 있다. 다만 이 영화의 프리퀄 <서울역>이 곧 개봉한다고 하니, <서울역>의 흥행을 염두에 둔 감독이 '<서울역>에서 마저 얘기할테니 보러 오세요!'라는 의도에서 <부산행>에는 일부러 나머지 설명을 누락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앞으로의 평은 모두 이 가정에 기초해 있음을 밝힌다.

1. <부산행>에 나오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괴물>에서의 그것과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후자에서의 원인유발자는 본질적으로는 우리나라 사회 관점에서 국외자(局外者)여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쟤네 탓이야!"라는 책임 전가가 가능한 반면 전자의 원인유발자는 국내(局內)에 있어서 그런 책임 전가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아픈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후속 대책 없는 대규모 살처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우리나라 구제역 '방역'에 대한 현장의 무명씨의 푸념 섞인 비판으로 막을 여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2. 그 시작점에 유의하며 본다면 이 영화는 국가의 절대성을 비판하고 있다. 정확히는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뭔가 하기는 하는데 정작 근본 원인은 못 건드리는 근시안적 행정, 그리고 그 무능을 (실체 없는) '외부세력'과 '폭력시위' 탓을 하며 덮으려고만 하는 국가에 대한 고발이자 의심이며 그런 국가의 존재 의의에 대한 비판이다.

3. 영화에서 그런 국가의 무능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은 것은 개인이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이때 살아남는 개인은 국가의 대척점에 서 있는 individual이기도 하지만, 그저 개개인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연대의식과 인간성을 갖춘 a human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단은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국가의 명령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따라서 개인이 국가에 선행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1을 증명하고 그 결과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후단은 그럼에도 '개인주의적' 개인은 무능한 국가만큼이나 혼란과 무질서를 유발하기 때문에 전단의 명제를 성공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인간적(humane)이기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가함으로써 개인으로의 환원론이 빠지곤 하는 지나친 낙관의 덫에 빠지지 않는 '대책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4.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희망의 가능성은 끝내 가능성으로만 남고 실현되지는 않아 미완으로 남는다. 사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정에서도 인간적인 개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은 결국엔 희생된다는 점에서 가능성의 실현을 위한 길이 굉장히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데, 결말에선 이 어려움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성을 가장 분명하게 상징하는 두 인물이 살아남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감염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사살하려는 군 병력의 총구 - 국가폭력을 보여주는 제1의 상징 - 이다. 다행히 작중에서 둘 중 더 확실하게 인간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자"는 노랫말로 그 총구를 거두게 하기는 했으나, 그 인물은 그 노래를 '울면서' 부르고 있고 다른 한 인물은 그 노래를 차마 함께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생존자'들을 맞이하러 가는 것은 다시 그들을 사살하려 했던 바로 그 군인들이다. 이는 위 3의 결론을 아는 인간적인 개인들만이 있더라도 비인간적이고 무능할지도 모르는 국가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정말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메시지는 인간성을 잃지 않되 비정한 현실은 직시하는 냉철함까지 겸비한 합리적 의심이라는, 매우 어렵지만 꼭 필요한 자세라고 하겠다.

번외. 이 영화가 영웅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반여성주의적 영화라는 평이 일각에서 있는데, 그 평에 절반은 동의하고 절반은 반대한다. 작중에서 여성 주인공들이 좀비들과의 격투신 등에서 직접 육탄전에 참여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의 주도적인 역할조차도 거의 보여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은 그 육탄전에 있지 않으며(볼거리가 육탄전인 건 맞지만), 내면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사는 반수 이상이 여성들의 몫이고, 결말에서의 두 생존자가 여성인 것 역시 영화의 궁극적 메시지와 관련하여 그들이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이어서지 그들의 소위 '여성성' 내지는 유약함을 강조하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결정적인 증거 하나 더. 작중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메시지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 한 명 있다. 이 인물은 좀비들의 출현으로 인한 혼란을 극렬시위자들의 난동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정부 발표를 보며 "'데모하는 것들'은 다 쓸어버려야" 된다고 하다가, 막상 막역한 친구가 좀비들에 희생되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 "너[희생된 친구]야말로 늘 퍼주고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냐며 눈물을 삼키다 인간성을 회복한 결과, 생존자들을 감염자라고 의심부터 하려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인물 역시, 여성이다.

번외2. 전혀 모르고 갔는데 영화 상영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하러 온 연상호 감독과 마동석, 안소희를 만날 수 있는 뜻밖의 기회를 얻었다. 연기자로서는 아직 신인인 안소희의 인사는 풋풋했다면, 베테랑인 마동석의 인사는 위에서 말한 바로 그 인간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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