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8.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세 건의 결정을 내렸다. (1)유기징역·유기금고형의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은 위헌(2012헌마409, 2013헌마105; 재판관 9인 전원일치), (2)수형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은 헌법불합치(2012헌마409; 7:1(단순위헌):1(합헌)), (3)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득표율 2% 미만을 기록한 군소정당에 대한 정당등록을 취소하고 그 정당의 이름을 4년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은 위헌(2012헌마431; 재판관 9인 전원일치)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번 결정들은 그 자체로는 물론, 보수 성향 재판관들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헌법재판소가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를 잘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압도적인 다수의견으로 선고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먼저 (1)에 대해서는, 2012헌마409 및 2013헌마105 결정 다수의견이 밝히고 있듯 “집행유예자는 집행유예 선고가 실효되거나 취소되지 않는 한 (…) 일반인과 동일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선거권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그러므로 이를 즉시 무효화하는 헌재의 위헌 결정은 타당하다. 또한 (1)과 (2) 모두에 대해 “구체적인 범죄의 종류와 내용 및 불법성의 정도 등과 관계 없이 (…)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거권은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여 시민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으로,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와 함께 생명권 다음으로 가장 본질적인 기본권이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그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이 범죄에 대한 응보로서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는 적절한 수단이라고 하고 있다. 단지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권의 특수한 우월적 지위를 고려해 볼 때, 필자는 집행유예자는 물론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도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부터 정당하지 않다는 이진성 재판관의 전부위헌의견(소수의견)에 동의한다. 직접 다수 국민의 의사를 집약하고 대변하는 대표가 되는 자격인 피선거권을 일정 정도 이상의 범죄를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표의 역할과 책임을 고려할 때 정당화되나, 그 대표를 뽑는 선거권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로서 언제나 보장돼야 한다.

필자의 주장을 이진성 재판관의 말로 다시 쓰자면,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권은 “참정권 중 가장 기본적 권리”다. “범죄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제재로써 민주사회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수형자가 공공질서를 해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금되어 있어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범죄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시민으로서 갖는 기초적인 의견표명의 자유조차 원천봉쇄하는 부당한 일이다. 즉, “범죄를 저질러 사회에 위해를 가했다고 해서 국가조직의 구성에 참여하는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논리필연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집행유예자와 마찬가지로 수형자에게도 선거권은 본질적인 권리로서 즉시 보장돼야 한다. 위 (2)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입법자에게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할 기준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다수의견은 제한할 수 없는 본질적 권리를 ‘조금 덜’ 제한하라는 모순적 요구다.

다음으로 (3)은 필자도 전적으로 환영한다. 대의민주제 하에서 의회 및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정당의 원내 진출을 막는 봉쇄조항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봉쇄’조항은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군소정당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지만, 정치학적으로도 필요악으로 인정되고 있다. 시간과 재원(財源)과 정책적 자원이 한정돼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에서 의회가 서로 다른 목소리 하나하나를 모두 완전히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을 억지로 요구하면 정상적인 의사결정 자체를 가로막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쇄조항은 어디까지나 해당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그조차도 군소정당을 선택한 국민의 유의미한 의사를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무력화하는 일을 가능한 한 줄이도록 최소한도로 행사되어야 한다. 봉쇄조항으로 정당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고 거기에 더해 그 군소정당의 재창당도 사실상 막는 것은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정치적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필자의 바람은 위 (3) 결정이 이 논리를 재확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배분 시 적용되는 우리나라의 봉쇄조항은 ‘지역구 의석 5석 또는 전국 득표율 3%’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한 자리도 받지 못한다. 앞서 밝힌 대로 이 봉쇄조항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 새누리당·민주당 양당이 전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제3당조차 원내에 진입하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지금의 봉쇄조항은 지나치게 엄격하다. 단 하나의 의석일지라도 원내정당과 원외정당의 차이는 매우 크고, 군소정당의 경우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의석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큰 플러스가 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우리 의회정치에 작게나마 숨통을 틔어줄 가능성이 있는 ‘(군소정당들 중에서는 그나마) 세력이 큰’ 군소정당도 지금의 봉쇄조항에 막혀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없게 되다 보니,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 심해지고, 우리 정치의 발전은 더 요원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헌재가 “단지 일정 수준의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군소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서 배제하기 위한 입법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만큼, (3) 결정이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더 많은 국민의 뜻이 조금 더 다양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배분 봉쇄조항의 문턱을 현실에 맞게,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을 개선하기 쉽도록 낮추는 신호탄이 되기를 희망한다.

현대사회는 이해관계가 다변화·다분화·전문화되어 그대로 두면 강자와 약자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되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정치 ― 특히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 ― 는 일부러라도 약자를 더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정치는 반대로 강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약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헌재가 위 (1), (2) 결정에 따라 국민이 시민으로서 갖는 정치적 의사 표명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만큼, 국민이 결집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권에 상기시켜야 한다. 그때 비로소 정치권은 이번 헌재 결정의 취지와 의미를 능동적으로 확장해서, 정당정치를 원래 형태에 가깝게 바로잡고 민주적 책임성이 약한 지금의 양당제 구도를 스스로 탈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헌법이 보장하고 헌재도 다시 한 번 분명히 인정한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국민이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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