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재구성

국보 1호를 무너뜨린 안전 불감증

Super:H 2008. 2. 11. 17:45

왜란도, 호란도, 6.25 전쟁에도 끄떡없이 500년을 버텨 온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이,
어젯밤 화재로 인해 5시간만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이 국가적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서울시는 2006년 3월 숭례문을 개방했지만, 그에 따른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숭례문 경비를 사설 경비 업체 (K모 경비업체)에 맡기고 자체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위험에 취약한 야간 시간대에는 무인 경비 시스템, 그나마 부족한 적외선 탐지기에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 8시 47분 첫 침입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고,
결국 이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문화재청은 낙산사와 수원 화성, 창경궁 근정전 등 대형 문화재의 화재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말뿐인 '대책 마련'으로 일관하다 이번 화재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매번 화재 때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접근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괜찮겠지',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문화재 안전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그렇게 국보 1호는 목조 건물이라는 이유로 스프링클러도 없이
소화기 8대와 소화전 2대만으로 위태로운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방 당국은 국보라는 명목에 발목이 잡혀 초기 진화에 실패했습니다.
지금 당국의 주장에 의하면 복잡한 내부 구조 때문에 빠른 진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화재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문화재청의 사실상 '원형 훼손 불가' 통보를,
더 큰 완전 훼손을 불러 온 그 통보를 받아들여 소극적으로 화재를 진압했습니다.
그 사이 숨은 불씨는 더 커져서, 잡힌 듯한 불길이 다시 치솟아 5시간만에 누각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물론, 숭례문은 국민들의 잘못으로 타서 붕괴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화재 관리 책임이 있는 관리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은,
근본적으로 국민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잠재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사실상 인재(人災)나 다름없는 국내외의 화재를 지켜봤으면서도,
'내 주변은 괜찮다', '저건 남의 일일 뿐이다' 며 자기 주변의 안전 관리에는 무관심하고,
어디에 숨어 있을 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곁에 두고도 예방하지 못했고,
그 의식이 다른 국민, 나아가 국가를 책임지는 정부 기관에까지 퍼져서
국가의 상징을, 국민의 기둥을 삼키고 국민의 가슴에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2008년 2월 11일 새벽 1시, 대한민국은 한 나라의 도읍을 내려다 보며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던 유산 하나를 잃었습니다.
이제 도심 한복판에 서 있던 자랑스러운 국보 1호는 다 무너진 흉물이 되었습니다.
2006년에 작성한 정밀 측정 도안이 있어 완전 복구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 속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소중한 역사와 국민의 정신은 절대 원상 복구될 수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500년동안 우뚝 섰던 역사의 웅장한 상징이
5시간만에 전소되어 붕괴된 현실이 안타깝고 허탈하지만,
이 화재가 서울시청, 문화재청, 소방 당국, 그리고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르는 비상 사태에 대비한 위험 예방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서
제2의 숭례문 화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어떤 약으로도 달랠 수 없을 씁쓸한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 봅니다.


국민 모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여 이 포스트에는 광고를 게시하지 않습니다.
▶◀ 故 국보 1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