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 생활 기반을 미국에 두고 있는 장기 불법체류자들에게 일시적 합법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이 행정명령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지만, 이를 공포하는 연설을 하면서 오바마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보다 큰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그 함의를 확장해서 우리나라 법치—법에 기초한 정치—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번 행정명령이 이민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미국 보수층 및 우리나라 일부 언론의 태도는 그의 이번 조치를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스스로 이번 조치가 그들을 "사면"해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불법이민자들을 무조건 허용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이는 행정조치를 내놓으며 그가 한 15분짜리 연설 전문[링크 클릭]을 들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번 행정명령의 첫 번째 내용은 국경 경비 강화 및 무단 월경자 추방 강화다. 두 번째 내용은 고급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외국인들의 이민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그 기술이나 능력은 이민자들이 직접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니 어디까지나 미국 정부가 '갑'이다. 논란의 핵심인 세 번째 내용도 사실상 생활 기반을 미국에 두고 생업에 종사해 온 장기 불법체류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범죄 관련 신원조회 통과와 적절한 세금 납부라는 조건도 걸려 있으며 그 보상도 영주권 부여가 아니라 일시 합법체류권, 즉 당분간 추방당하지 않을 권리일 뿐이라서 이들이 완전히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는지 여부와 무관한 별개의 문제다.

   이렇듯 오바마는 불법체류자들이 미국 내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그들이 미국에서 생계를 꾸리고 있거나 학업을 이어나가는 등 소박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범법자만 양산하는 강경한 이민정책에 약간의 일시적 해방구를 마련하는 거래(deal)를 한 것이다. 오바마는 그들의 불법성을 모른 척하고 모든 불법체류를 합법화하자고 한 적이 없다. 연설을 보면 오바마는 오히려 “책임성(accountability)”을 강조하면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의견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대신 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규모 추방 실시 방침을 고수하면서까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가족과 삶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며 불법체류자들에게도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우선 보장하는 인간다운(humane) 정책이 우선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익에 반하는 ‘귀찮은’ 존재들에게 제재의 칼날만 들이댈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들의 아픈 현실을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반대의견은 묵살해도 된다는 식의 폐쇄성이 눈에 띄는 지금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필자는 이런 인간다움을 기치로 내걸고 그 인간다움의 정책화를 추진하는 오바마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 정책화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행정명령을 택한 것 역시 필자는 불가피하고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의 이번 행정명령이 제약이 많은 현실 속에서 인간다움을 더 널리 실현하겠다는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행정명령이라는 방식은 그 대의를 가로막는 하원 내 공화당의 ‘대안 없는 반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통치행위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그 권한을 부당한 제약을 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이민 관련 조치처럼 그 방향이 국민들의 지지도 어느 정도 확보했고 그에 따라 상원이 해당 내용을 담은 법안을 초당적 합의를 통해 이미 의결하기도 한 경우라면 특히 그래야 한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하원의 입법교착 및 그것을 초래한 원내 공화당의 태도를 명시적으로, 그리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르게 평가할 여지가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의회는 대통령과 함께 서로 다른 선거를 통해 서로 다른 권력을 합법적으로 인정받는(dual legitimacy) 정치적 주체다. 대통령이 통치행위를 안정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중요성만큼이나 그 통치행위를 국회가 충분히 검토해서 견제하고 승인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도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의회, 그리고 그 안에서 의회 구성원 중에서도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마련인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파트너가 되어야 하며, 대통령은 의회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즉, 대통령은 의회에 자신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시도를 부수적 통치행위로서 당연히 할 수 있지만 의회가 그 설득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이 국회에 자신의 뜻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바마는 연설을 통해 하원에서 공화당이 자신들의 의견에 반한다는 이유로 이민개혁법안 관련 논의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바람에 표결을 했으면 당연히 통과됐을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한 채 묶여 있었다고 비판한다. 물론 공화당이 "하나의 사안에 대한 반대를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한 반대로 확장"시켜 불필요한 교착(gridlock)을 초래했고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오바마의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보다 정교한 하원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합의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에 앞서 전격적으로 의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권한인 행정명령을 선포하면서 전국민이 보는 연설을 통해 하원 및 하원을 장악한 다수당인 공화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의회에 대한 설득을 넘어선 압박으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공화당은 이 발언에 크게 반발했다.

   대통령의 정파성을 인정하고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정당을 대변하는 것을 인정하는 미국에서도 이럴진대, 대통령에게 국민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합의적 국정운영을 임무로 부여하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의회를 통제하려 하는 것은 더더욱 비판받을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규제완화 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등과 관련하여 국회에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고 합의를 구하려는 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국회는 정부 제출 법안을 속히 처리하기를 바란다”는 통지만 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요구는 국회, 특히 야당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하나의 사안에 대한 반대를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한 반대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여당에게 그런 ‘억지’에 ‘끌려가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이어서, 국민 여론 수렴의 장 및 협상장으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견제하는 국회와 여당과 야당이 갖는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오바마는 자신의 의견을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한 셈이지만, 그 과정은 거기에 수반되는 월권적 의사표명이라는 잘못을 능가할 수 있을 만큼 긍정적인 의의—다수 국민의 지지와 상원의 의결을 통해 확인된 여론의 실현 및 보편적 자유와 권리의 실질적 보장—를 지닌다. 이것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보편적 자유와 권리의 후퇴를 초래할지도 모를 법안을 여론의 반대를 억누르고 국회와의 협의도 생략한 채 밀어붙이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모든 정책은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법제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협의를 통해 실질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오바마의 이민개혁이 구체화된 방식이 보여주듯 그 실질적 정당성은 정책의 형식적 근거를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확보해야 할, 현대의 민주적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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