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손석희 보도국장 영입 이후 (그리고 그 이전에도 종편 중에서는 그나마) 방송뉴스 면에서는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 언론지형에서 돋보인다. 하지만 그 위에 있는 게 결국은 삼성이라는 점에서, 이게 진정 의미있는 변화가 맞는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JTBC가 잘 한다고 해서 보수 성향 언론사만으로 구성돼 있는 종편의 근본적 문제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JTBC의 이른바 '진보적'(보수언론이 다루지 않는 걸 다룬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보도가 빛난다고 해서 인권이나 복지, 처럼 진보적 이슈에 소극적인 삼성의 태도가 바뀐 것도 아니다. JTBC는 그 부분이 비판받을 만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거대자본이 자신들의 약점을 '물타기'하려고 '우리도 공정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일부러 보여주려는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다.

지금 JTBC 보도국과 기자들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저런 걱정이 기우이기를, JTBC가 자본의 논리에 근본적으로 예속돼 있음에도 보도만큼은 자유를 폭넓게 확보한 상태에서 진짜 문제의식을 갖고 언론지형의 균형 유지에 실제로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다만 우리나라 언론 전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이자 언론소비자로서, 그 이면에 있을지도 모르는 구조적 한계에 대해서 한 번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언론소비자들이 JTBC의 변화를 다소 삐딱하게 바라보는 건 오히려 '손석희 열풍'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언론계 전체를 개선하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다. 물론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지만, 언론통제가 합법적으로 가능했던 권위주의 시대가 아닌 이상 언론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언론소비자의 외면이다(대표적으로 2012년 노조파업 후 MBC를 보라). 지금 우리나라는 부분적 언론자유국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다행히 권력이 대놓고 언론통제를 할 수는 없어서 몰래 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래서 JTBC의 용기는 칭찬하되 JTBC의 지배구조를 보고 그 용기의 진정성을 의심해 보는 언론소비자의 역할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언론이 태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친정부적이든 반정부적이든 그 태도를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실체적 진실과는 멀어진다는 깨달음은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얻었다. JTBC도 그 깨달음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근거 없이 믿음에만 기초한 음모론은 소모적이다. 근거가 있다고 해도 확실하지 않은 근거를 백 퍼센트 확신하는 건 근거 없는 믿음만큼 위험하다. 하지만 (법률용어를 빌리자면)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건 필요하다. 그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숨어 있었던 문제를 인식해서 그에 대한 비판과 해결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면 '합리적 의심'을 합리적으로 거두고 더욱 지속가능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예방 효과도 있어서 더욱 좋다. 전자든 후자든 언론의 횡포 내지 독주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한다는 것은 덤이다.

그러니 JTBC를 그냥 좋아하지 말고 '내가 지금 마냥 좋아해도 괜찮은가'를 고민하면서 응원하자. 나아가 다른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들이 왜 좋은지/싫은지,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의 이면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자.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더 많은 JTBC가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그래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언론지형은 진실을 묻어버리는 대신 밝혀낼 수 있고, 그 덕분에 언론소비자들도 알 권리와 생각할 권리를 진정 보장받을 수 있다. 완벽하게 공정한 개별 언론은 있을 수 없을지라도,균형잡힌 언론지형은 언론소비자들이 언론을 감시하여 만들 수 있다.


+ 언론소비자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질문을 '잘' 던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과 같은 몇몇(전부는 아니다!) 비주류언론에 박수를 보낸다. 단, 그들도 그들의 보도 이면에 그들의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지는 않은지 자성을 멈추지 않고, 언론소비자들의 그런 의심에 언제나 열려 있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그들도 언론인 이상 앞서 언급한 시민들의 깨달음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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