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생각

헌법재판소의 미래를 위한 제언: 김철수 명예교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Super:H 2013. 9. 6. 19:07

2013. 9. 6.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소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김철수 서울대학교 법대 명예교수님이 강연을 하셨다. (강연 내용은 '헌법재판소의 과거, 현재, 미래' 포스트 참조) 교수님은 오랜 헌법연구 경륜과 경험 덕분에 정연하게 논리를 전개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 몇 가지 있어 강연 후 내 평소 생각을 덧붙여 정리해 보았다.

(1) 교수님은 노무현 정부 당시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위헌 결정을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관습헌법의 법원(法源)성을 인정하신다. 하지만 나는 관습법―대표적으로 민사관습법―과 달리 이전에 한 번도 정립된 적이 없고 그 이후에도 헌재가 그 존재와 역할을 뚜렷하게 인정한 적 없는 관습'헌법'이 헌법재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절차상 위법이 없는 상태에서 원칙적으로 사법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통치행위의 성격이 있는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판단, 그것도 위헌 판단에 대한 근거라면 더더욱.
  
나는, 헌재가 이 사안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질서의 엄정성과 명확성을 위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은 분명하나, 헌재로서는 법적 효력이 확실치 않은 관습헌법을 근거로 삼을 수 없다. 그것이 사안의 유일한 판단 근거이므로 헌재는 판단을 유보한다(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각하 결정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랬다면 후에 헌재가 세종시에 대해서 내린 합헌 판결과의 일관성도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2) 우리나라 헌재가 독일처럼 최고의 사법기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입장에는 동의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법원-헌법재판소의 분명한 분립, 나아가 행정-특허-가사 등 각 세부분야별 최고재판소 별도설치 및 각 최고재판소 판결의 공통기준을 제시하는 준거로서의 헌법재판소를 골자로 한 교수님의 사법적극주의와 사법분산주의에도 동의한다. 일반 법원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올바른 헌법해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 대승적인 관점에서 사회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그 준거를 제시하기 위해 더 넓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볼 때 교수님이 함께 주장하시는 대로 재판소원을 허용한다면 오히려 사법분산주의와 모순된다. 자기 주장의 타당성과 관계없이 항소-상고를 거듭하는 우리나라 문화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를 단순히 대법원 다음에 거치는 4심 담당 법원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 행위나 과정 그 자체의 위헌성은 3심을 거치는 동안 교정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데도 재판 당사자가 재판 결과에 대한 헌법적 심사를 원한다면 재판의 근거가 된 '규정의 해석'에 위헌 소지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는 현행 위헌법률심사형 헌법소원으로도 구제할 수 있다.

(3) 교수님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과잉보호되고 있다고 주장(imply)하신다. 공익이 사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결국 험법재판소가 사익과 공익의 절충점을 잘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 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사익보다 공익에 방점을 찍고 있는 교수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공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익은 공익보다 조금 더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공법에서 사익은 공익에 비해 합법적으로 침해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 제37조 2항의 공공복리는 개별 법률에서 상황에 맞게 무엇이 공익이고 어떤 경우가 그 공익을 해치는 경우인지 명확하게 제시된 경우에만 사익에 우선할 수 있다. 이 관점에 기초하여,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공익의 이름으로 게인의 자유, 특히 표현의 자유를 다소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행복추구권의 근원적 출발점이기도 한 중요한 자유이므로 그 제한을 일부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이상의 관점 차이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독립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맺음말은 내가 생각해 왔던 헌법재판소의 이상적 역할과 일치한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격을 법관 자격이 있는 자뿐만 아니라 법학자에게도 부여해야 헌재 내부의 다양성이 근본적으로 보장된다는 생각 역시 교수님과 내가 함께 갖고 있다. 사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나와 교수님의 입장이 다른 이유도 현재 국민통합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통합이 필요하고, 헌법재판소가 거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제는 교수님과 내가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도 헌법재판소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법리와 결정을 제시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고이자 최후의 보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