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 2012/10/23 - 민주적 사법권의 확립을 위한 법과 정치의 공존과 그 역할

사법부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속력·기속력 있는 판결을 내린다. 그래서 사법부는 사회적 가치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형성할 의무가 있다. 판결로써 좋은 전통적 가치는 유지하고, 변화하는 가치는 새롭게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소극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이 사법부의 역할이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특정 의제를 선제적으로 제기하고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의 활동에 비해서는 물론 대중의 정치적, 사회적 요구에 비해서도 한 걸음 느리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 특성을 고려할 때, 사법부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시정하는 역할을 다하려면 지나치게 보수화되어선 안 된다. 사법부가 ‘진보화’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다양한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최근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단계에서 우리나라 사법부가 그동안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던 소수자와 약자의 의견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대법원의 판결은 아직 조금 부족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더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양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여전히 기존의 지배적 가치관과 다르지만 새로이 힘을 얻고 있는 가치들을 깊이 있게 검토하여 포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준사법부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도, 그 도입 취지와 인원 구성 상 대법원보다는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의 가치를 옹호하는 쪽으로 조금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사법의 민주성 강화는 그래서 필요하다. 사법부가 더 많은 국민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해야만 본질적 소극성의 토대 위에서도 사회적 적극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가 현대적 의미와 역할을 다하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안―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로스쿨 확대와 법조일원화 등―은 그 본질과 근본 목적이 사법의 민주성 확보가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

사실 사법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따로 있다. 미국처럼 연방대법관을 종신직으로 하여 기득권의 외압으로부터 사실상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것, 또는 일부 주의 고위법관을 선거로 선출하여 대중의 민주적 압력에 제도적으로 노출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적합하다. 미국의 정치적 배경에 최적화되어 있고 그래서 미국 시민들이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적 배경과 시민들의 생각에도 그대로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사법부가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제대로 대변하게 하려면, 사법부의 비민주성을 조금씩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존 우리나라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한다는 미명 아래 그들만의 폐쇄적 구조를 만들고 공고히 해 왔다. 하지만 그 구조는 사법부를 사법부가 가장 먼저 대표해야 할 대중들로부터도 독립시켜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했다. 사법부, 나아가 사회 전반을 헌법 정신에 부합하도록 이끄는 헌법재판소가 이 구조를 깨고 사회에 대한 인식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열린 공론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할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요즘, 사법부도 대중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광의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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