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유치원에 다녀와서 엄마가 준비해주신 간식을 먹고 잠시 놀다 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만화영화 시간이 다가왔다. 어린 마음에 만화영화는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봐야 할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그래서 그 시절, 평일 오후의 만화영화 본방사수는 내게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매일 오후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만화 시작 오 분 전부터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나를 가장 먼저 반기던 건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지우와 피카츄(당시 난 디지몬보다 포켓몬을 더 좋아했다)가 아니라 광고였다. 한 차례 광고가 끝나고 오프닝이 나간 후에 광고는 다시 이어졌다. 짧지만 여섯, 일곱 살에게는 결코 짧지 않았던 에피소드 하나가 끝난 후에도 광고는 또 나왔다. 로켓단을 물리치던 지우와 그 친구들의 용감한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방송이 끝나고도 몇 분간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던 나에게 그 광고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광고 속 장난감들은 거의 대부분 현란한 불빛과 신기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 화려한 화면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광고 속 성우의 목소리는 언제나 극적이었다. 장난감의 이름과 그 장난감의 새로운 기능을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강조하던 그 격양된 목소리는 철모르던 유치원생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내가 갖고 놀면서 어쩌다가 친구들이 집에 오면 자랑하기도 하던 장난감의 종류는 꽤 많이 바뀌었다. 엄마는 새 장난감을 살 때마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예전의 장난감을 장난감통이나 서랍 구석에 던져 놓아서 문제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렴 괜찮았다.

예닐곱 살 때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광고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이제 포켓몬스터 본방사수를 외치던 만화를 향한 열정이 조금 식었고 뿅뿅 소리가 나는 유딩용 장난감에 대한 소유욕(?)도 많이 시들었지만, 광고는 다른 뭔가를 계속 사고 모으도록 자극했다.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건 KBS 뮤직뱅크, MBC 음악캠프, 그리고 SBS 인기가요의 처음과 끝에 광고가 자주 나오던 두 가지 먹을거리였다. 핑클과 SES의 스티커가 들어있던 달달한 샤니 빵과 삼립 빵, 그리고 딱지나 카드 비슷한 것이 들어있던 치토스류의 스낵들.

그 빵과 스낵 역시 장난감처럼 광고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슈퍼에 가서 처음 사 먹었을 때, 솔직히 자주 다시 사 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00종의 스티커(또는 딱지, 카드 등등)를 모아보세요!’ 하는 후속 광고에 이끌려 그것들을 실제로 일주일에 몇 번씩 사 먹었기 때문이다. 빵과 스낵의 맛보다 그 안에 든 것들에 눈이 멀어 내 주머니 속 동전들을 축냈던 것이다. 그 무렵 1년간 같은 과자를 계속 사서 총 78종인가 되었던 카드를 35종 정도 모으고는 스스로 뿌듯해하며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광고의 그런 영향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광고에 나온 물건을 바로 사야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나에게 그 물건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지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게임기,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등 내 선에서 바로 살 수 없는 물건에 대한 광고로 관심이 옮겨간 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이어졌던 광고 시청 직후 소비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여전히 광고에서 본 물건들이 내 관심 목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값이 비싸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생각하게 되면서 충동적인 구매의지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비사회가 쏟아낸 광고들은 나에게 어렸을 때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나에게는 앞에 소개한 것 외에도 광고와 관련된 어린 시절 추억이 많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 추억들은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내 기억 속 광고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언제든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의 매개체가 바로 광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아이들이 옛날의 나처럼 광고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 썩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함께 든다. 아이들에게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고 작은 것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광고는 광고주들이 자신들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제작했기 때문에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게 과장되거나 거짓된 정보를 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이들은 옳지 못한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고 거기에 휩쓸리기 쉽고, 이는 아이들에게 정신적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요즘은 광고의 그런 부정적 측면에 대한 걱정이 가끔 내 기억 속 광고가 가져다주는 작은 행복보다 커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어린 시절의 광고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어린아이들에게만큼은 광고가,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의 소비 지향성이 나에게 미쳤던 것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광고의 부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이상, 나중에 추억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들을 광고의 영향권 아래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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