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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밝히다: 《도가니》의 강인호에 대한 분석과 평가

Super:H 2011. 11. 22. 22:09

우리나라 언론에는 잊을 만하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임원, 정치인 등의 비리가 보도된다. 그 때마다 대중들은 분노하며 비리 관련자의 엄중 처벌과 비리 척결을 촉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검찰의 비리 수사는 지지부진하다가 불완전하게 종결되고, 비리 연루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친다. 비리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비리를 은폐함으로써 더 큰 비리의 발생 가능성을 묵인하는 것이다.

이는 도가니의 무진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애학교 교장 이강석과 행정실장 이강복이 수년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청각장애 아동들을 추행하고 성폭행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만행은 무진에 가득한 해무에 의해 가려지고, 대부분의 자애학교 교사들에 의해 다시 감춰지고, 교육청·시청 관계자들을 포함한 무진의 저명인사들에 의해 또 한 번 숨겨진다. 이렇게 무진을 겹겹이 둘러싼 유·무형의 안개 속에서 자애학교의 불편한 진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아니, 알려질 수 없었다.

강인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공포의 진원지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렇게 그는 서유진의 말처럼 상식이 없광란의 도가니속에서 청각장애 아동들을 구하기 위해 안개를 뚫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다. ‘인간도처 유비참이자 인간도처 유짐승임을 통감하고 망치 하나도 없이 거대한 빙하를 향해 그저 맨손으로 돌진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 뒤에 숨겨진 하나의 거대한 세계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교장·행정실장 측과 재판정에서 다투는 동안, 그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벌레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그 벌레들은, 강인호가 긴 법정 공방에 힘들어하며 교장과 행정실장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것을 후회하려 하자 그의 꿈속에서 그 자신도 괴롭힌다. 이는 벌레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주도하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의 무관심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래서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또 한 겹의 안개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강인호가 서유진과 송하섭 등의 도움을 받아 자애학교의 진실이 드러나고 교장과 행정실장이 여론의 비판을 받자,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 유난히 심했던 무진의 안개아마 그 벌레들이 만들어냈을는 잠시나마 걷힌다.

그러나 그가 군에 있을 때 성관계를 가졌던 여제자의 자살과 그의 전교조 경력이 문제가 되고 교장·행정실장 측 변호사에 대한 판사의 전관예우가 눈에 띄게 심해지면서 불편한 진실의 본질은 다시 조금씩 가려진다. 잠시 걷혔던 무진의 안개가 다시 자욱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어둠의 세계, 공포의 세계, 위선과 가증과 폭력의 세계에 대한 어떤 뜨거운 것을 느낀다. 하지만 유리·연두·민수의 부모님이 돈 때문에 교장·행정실장 측과 합의한 뒤 교장과 행정실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그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결국 해임통보를 받은 그는, 집행유예 판결 이후 서유진과 자애학교 학생들이 무진시청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며 머물던 천막이 철거되던 날 그들을 돕는 대신 서울로 올라가 모든 연락을 끊고 만다.

강인호는 장경사의 말처럼 원래 세상은 안개낀 것임을 느끼고 좌절했다. 그는 기득권층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것임을, 그것을 위해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힘이 못 가진 자들이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힘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했다. 또 그는 거짓보다 더 거짓 같은 진실이 어떤 설득도 하려 하지 않아서 이 세상 도처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치듯 무진을 떠났고, 그로 인해 안개가 없는 서울에서도 직장인들의 흰 와이셔츠를 보며 안개 같았다고 느낄 정도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 선택을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기득권층이 주도하는 세상의 질서는 이미 구조화되어 강인호가 혼자서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대 구조와 맞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는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아직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청각장애 아이들을 뒤로 하고 무진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세상에 알려 악인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무진에서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꼭 필요하지만 모두가 꺼리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용기 있게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마지막 선택에 불구하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